[노트북 단상] 거제시보건소에 무슨 일이?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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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진 중서부경남본부 차장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첫 등장 때만 해도 대한민국에서 첫손에 꼽는 명문 의대 출신 엘리트라는 사실에 지역사회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런데 반년을 못 채우고 사표를 던졌다. 정확히 임용 4개월 만이다. 내부 직원과 갈등 끝에 직위해제되자 자진사퇴한 경남 거제시보건소장 이야기다.

보건소장은 환자 진료는 물론, 행정 업무도 봐야 한다. 일반 병·의원에 비해 업무량이 많고 부담도 크지만, 급여는 공무원 수준에 그친다. 거제시의 경우 신분은 4급 상당, 연봉은 8386만 원이다. 당장 억대 연봉을 받는 의사 입장에선 굳이 나설 이유가 없다. 여기에 지방의 교육·문화·생활 인프라는 수도권에 비해 낙후됐다는 편견도 걸림돌이다.

인구 20만 명이 넘는 거제도 마찬가지. 2021년에도 의사 출신이던 전 보건소장 후임을 선발하려 수차례 공모를 진행했지만 여의찮아 서기관급 보건직 공무원을 소장으로 임명했다. 2차례 이상 공모를 진행했는데도 지원자가 없으면 간호·의무·의료기술·보건진료 분야 공무원을 임용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올해도 후임자를 찾으려 지난 4월 첫 공고를 냈지만, 지원자가 없어 무산됐다. 이후 지난 6월 재공모에 소장이 응시했고, 서류심사와 면접을 거쳐 7월 1일 임용됐다.

그런데 얼마 못 가 내홍에 휩싸였다. 치매센터장을 겸하고 있는 소장이 나병(한센병) 치료제인 ‘답손(Dapsone)’을 치매 환자에게 처방한 것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면서다. 센터 협력의사 재계약과 약국에서만 판매할 수 있는 전문의약품을 수의계약으로 구매해 무료로 나눠준 직원 처분을 두고도 갈등을 빚었다.

소장은 이들에게 징계를 통보하고 집행부에 인사 조처를 요구했다. 하지만 집행부는 인사권은 임용권자인 시장에게 있다며 거부했다. 이 와중에 지난 2일 내부 투서에 따른 인사위원회가 열렸고, 소장은 직위해제됐다. 소장실 출입 통제와 행정과 출근 명령을 통보받은 그는 사표를 제출했고, 시는 의원면직(자발적 의사에 따라 공무원 관계를 소멸시키는 행위) 했다.

쫓겨나듯 물러난 소장의 항변과 달리, 보건소 직원들은 소장이 애초 보건의료행정 수장에 부적합했다고 지적한다. 치매연구에만 몰두한 채 다른 행정업무는 하지 않으려 했고, 직원에게 반말이나 폭언을 일삼는가 하면 업무시간에 음악 감상, 인형 색칠 등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결국 잘못된 만남으로 귀결된 이번 사태를 두고 ‘공무원 제 밥그릇 챙기기다’, ‘소장의 아집과 독선이 문제’라는 등 뒷말이 무성하다. 이쯤 되니 문제가 곪아 터질 때까지 대체 거제시는 무얼 했냐는 생각이 든다. 애초 의료와 행정을 두루 살필 수 있는 인사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작동했는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엎질러진 물이다. 잘잘못을 떠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공공보건의료행정은 또 다시 긴 공백기를 맞게 됐다는 점이다. 이미 민낯을 보인 터라 당장은 후임자 인선도 쉽지 않을 듯하다. 그로 인한 불신과 피해는 오롯이 지역사회와 지역민이 짊어져야 한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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