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힐 뻔한 마산의 항일독립영웅 김명시를 조명하다
김명시/이춘
‘조선의 잔다르크'로 칭송
지난해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김형선·형윤도 ‘항일’ 인정받아야
김명시(1907~1949), 42년의 짧은 삶을 살다 간 그는 누구인가. ‘묻힐 뻔한 여성 항일독립영웅’이다. 올해 작고한 마산 출신의 역사학자 강만길은 “식민지 시대 고향 마산이 배출한 인물이 누구냐”라는 질문에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만주벌판 휘달리며 일본군과 총으로 싸운 김명시다. 마산독립운동사에 그를 가장 앞에 세워야 한다”고 했다.
<김명시>는 김명시의 삶을 추적하고 그 복원 과정을 담은 책이다. 마산의 시민단체 회원 이춘이 썼다. 김명시에게 지난해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두 번의 포상 신청이 탈락하고 ‘3수’ 만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이렇게 비교하면 된단다. 일제강점기와 특히 해방 직후엔 김명시가 유관순보다 더 유명했다. 당시 유관순은 아직까지 무명전사였고, 김명시는 일찍이 1927년부터 신문에 이름이 오르내린 ‘조선의 잔다르크’로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해방 직후 무정과, 김명시가 백마를 타고 종로통을 지나갈 때 사람들이 “무정 장군 만세! 김명시 장군 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1945년 12월 <신조선보>는 김명시를 ‘해방된 조국에 귀환한 여성 혁명 투사’로 소개했는데 아닌 게 아니라 김명시는 당시 인기 강연자이자 토론자로 꼽혔다는 것이다.
김명시는 어릴 적 삶이 힘들었으나 3·1 운동의 거대한 숲에서 자라난 투사였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홀어머니가 3·1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희생된 것이다. 2남 3녀가 있었는데 오빠 김형선(1904~1950)과 남동생 김형윤(1910~?), 그리고 김명시가 어머니의 의기를 이어받아 독립운동에 나선다. 마산의 항쟁 분위기 속에 키워진 김명시의 첫 결정적인 순간은 1925년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는 거기서 공부한 뒤인 1927년 상하이로 파견돼 항일독립운동을 펼치게 된다. 1930년 ‘하얼빈 일본영사관 습격 사건’이 김명시의 만주 활동 중 가장 잘 알려진 예다.
그러나 그는 1932년 밀정 독고전의 배신으로 구속돼 7년간 신의주형무소에 수감된다. 당시 체포됐을 때 <매일신보>는 ‘비거비래(飛去飛來) 홍일점 투사’로 김명시를 소개했다. 홍길동처럼 신출귀몰하게 ‘날아갔다 날아온다’는 뜻이다. 7년 형기를 마치자마자 그는 중국 팔로군에 합류하고 1942년 무정과 함께 조선독립동맹 조선의용군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책은 김명시를 소련과 중국을 넘나든 국제주의자이자 항일무장투쟁전사로 그리고 있다. 해방 정국에서 그는 80만 맹원을 자랑하는 부녀총동맹의 간부였다.
그러나 남한 정국이 급랭하던 1947년 8월부터 김명시의 행적은 2년 3개월간 어디서도 찾을 수 없게 된다. 그는 체포되지도 않았고 월북하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1949년 10월 10일 오전 5시 40분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부평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된 김명시가 상의를 찢어 수도관에 목을 매 죽었다는 사실을 경찰이 발표한다. ‘북로당 정치위원’이란 이상한 수식이 달린 의혹투성이 죽음이었다.
1999년 마산에서 시민단체 ‘열린사회희망연대’(대표 백남해 신부)가 출범해 지워진 독립운동사의 큰 줄기를 찾아야 한다는 사업을 벌였다. 영화의 힘이랄까, 2015년 영화 ‘밀정’ ‘암살’이 천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을 조명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희망연대’에서는 “김명시의 삶과 죽음이 한국 현대사”라며 2018년부터 김명시 장군 흉상 건립 운동에 나서고, 이어 2019년, 그간 연좌제의 사슬로 숨죽이고 살았던 마산 창원 거제에 사는 김명시의 친족들을 찾아냈다.
희망연대는 김명시가 ‘북로당 정치위원’이란 것은 허위이고, 김명시가 북한을 택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며, 그리고 무엇보다 김명시가 일제강점기 여성의 몸으로 일본군에 맞서 총을 들고 싸운 독립운동가라는 사실은 흔들릴 수 없는 것이라며 서훈을 거듭 신청했으며, ‘3수’ 만에 이뤘다. 시민운동가 김영만을 비롯한 그들이 지역사를, 항일투쟁사를 채운 것이다. 저자는 “그가 꿈꾸던 세상과 혼신을 다 바친 실천을 통해 오늘의 우리를 다시 돌아보는 것, 그리고 그가 했던 것처럼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한 걸을 앞으로 내딛기 위한 것이 김명시를 역사에 소환한 이유”라고 했다. 남은 일이 있다. 김명시의 오빠 김형선, 남동생 김형윤의 독립운동도 국가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는 과제가 그것이다. 이춘 지음/산지니/400쪽/2만 3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