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K포퓰리즘’이라는 막장 드라마, 알고 봐야 안 당한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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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의 정치학

포퓰리즘 정치 핵심 ‘적과 친구의 구별’
한국, 팬덤 정치로 최적의 환경 마련

‘서울 메가시티’ 방안 정치공학적 정책
공매도 금지 조치는 바보 같은 짓
‘종이컵 금지 조치 철회’ 해서는 안 될 일
내년 4월 총선 앞두고 마구잡이식 공약
포퓰리스트, 매스컴 활용 능수능란
정치 무관심·냉소 땐 현혹 가능성 커
김대중 “벽에 대고 욕이라도 하십시오”

포퓰리즘이 한국 정치를 위협하고 있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지난 6일 “비수도권에서 메가시티를 키우겠다는 의지를 표명해 오면 검토하겠다”라고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포퓰리즘이 한국 정치를 위협하고 있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지난 6일 “비수도권에서 메가시티를 키우겠다는 의지를 표명해 오면 검토하겠다”라고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안철수 의원이 복국집 칸막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얼굴을 붉혀 화제가 되었다. 지난 6일 안 의원은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복국집에서 기자들과 식사하다 이 전 대표의 뒷담화를 했다. 공교롭게도 바로 옆방에 이 전 대표가 자리를 잡아 이날 이야기가 다 들렸다고 한다. 이 전 대표가 “안철수 씨, 조용히 하세요”라고 고함을 쳤고, 안 의원은 잠깐 멈칫했지만 계속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는 게 사건의 전말이다. 앙숙이라고 불리는 이 두 사람,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싶다. 이 전 대표는 가끔 품성 논란에 휩싸이지만, 신당 창당 여부로 요즘 가장 핫한 인물이다. 대선후보까지 했던 안 의원이 훨씬 더 손해가 아니었을까 싶다. 안 의원은 요즘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지나고 나니 그날 해프닝은 대한민국 보수를 대표하는 신구 포퓰리스트가 세대 교체하는 장면이었던 것 같다.


뜨는 이준석 vs 지는 안철수

2012년 대선에서는 ‘안철수 현상’이라는 바람이 세게 불었다. 서울시장을 박원순 후보에게 양보한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당시 오랫동안 대권 지지율 1위를 달리던 박근혜 후보를 누르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조기숙 교수는 안철수 현상을 연구해 2016년에 〈포퓰리즘의 정치학〉을 출간했다. 여기서 많은 이들이 세계에 유례가 없는 기이한 현상이라는 안철수 현상은 다른 나라에서도 종종 목격되는 포퓰리즘 현상이라고 결론 내렸다. 특히 안철수의 포퓰리즘이 미국의 로스 페로와 매우 유사성을 보인다고 지적한 부분이 흥미롭다. IT업계 인물인 페로는 재산이 도널드 트럼프보다 많았다. 그는 1992년과 1996년 미 대통령 선거에 나서 각각 빌 클린턴에게 패배했다. 미 대통령 선거에 제3후보로서 10% 이상의 득표를 확보한 마지막 인물이었다. 2019년에 사망한 그는 중도 정치인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포퓰리즘 성향의 비주류 정치인이었다.

현재 보수 진영 포퓰리즘의 선두 주자는 이준석이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맞서는 포지션을 취하며 매일 같이 뉴스를 쏟아내고 있다. 사실 여당 대표에서 무참하게 쫓겨나는 모습에 원래 이미지가 많이 희석되긴 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 대선 때 '이대남'을 끌어들이기 위해 세대 갈등과 남녀 갈등을 앞장서서 조장했다. 20대를 남녀로 갈라치고 이대남들의 반페미니즘 정서를 활용하기 위해 여성가족부 해체를 대통령 공약으로 내놓았다. 장애인 단체의 시위에 대해서도 “선량한 시민 최대 다수의 불편을 야기한다”고 몰아붙인 이다. 갈등을 부추겨 표를 얻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포퓰리즘이 한국 정치를 위협하고 있다. 사진은 에콰도르 키토에서 반정부 시위대가 트럭을 타고 행진하는 모습. 연합뉴스 포퓰리즘이 한국 정치를 위협하고 있다. 사진은 에콰도르 키토에서 반정부 시위대가 트럭을 타고 행진하는 모습. 연합뉴스

“우리가 진짜 민주주의 대변자”

정치학자들은 포퓰리즘을 정치의 방식으로 규정한다. 카스무데와 크리스토발 칼트바서 교수는 〈포퓰리즘〉에서 “사회가 궁극적으로 서로 적대하는 두 진영, 즉 순수한 민중과 부패한 엘리트로 나뉜다. 그리고 정치란 민중의 일반의지의 표현이라고 주장하는 중심이 얇은 이데올로기”라고 말했다. 중심이 얇다는 표현은 다른 이데올로기와 얼마든지 결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포퓰리즘은 다른 이데올로기에 들러붙는 형태를 띤다. 좌파 포퓰리스트들은 사회주의와 결합시키고, 우파 포퓰리스트들은 민족주의와 결합시키는 경향이 있다. 포퓰리즘 정치의 핵심을 독일 정치학자 카를 슈미트가 말한 것처럼 “적과 친구의 구별”로 보기도 한다. 한국은 팬덤 정치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 포퓰리즘 정치가 자라날 최적의 환경을 갖추게 됐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탈리아로 가는 길〉의 저자 조귀동이 “권력 분립, 법치주의,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 집단에 대한 관용 등 전통적인 자유주의적 원칙은 무시된다. 선거용 정당을 만들지 않고 기존 정당을 장악한 뒤, 해당 정당을 포퓰리즘 정당으로 바꾸는 사례도 여럿 나타나고 있다”라고 말한 대목도 의미심장하다. 포퓰리즘 정치세력은 자신들이 진짜 민주주의의 대변자라고 주장하며 국민과 격의 없이 소통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길 좋아하니 주의할 필요가 있다.

얼마면 될까, 얼마면 되겠냐

정부와 여당이 최근 연이어 내놓는 정책들이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수도권 경쟁력 확보를 명분으로 내놓은 ‘서울 메가시티’ 방안이다. 이호철이 〈서울은 만원이다〉라는 소설을 낸 게 1966년이다. 서울은 이미 너무 메가(mega·거대한)인데, 서울 면적의 절반에 해당하는 김포시를 서울에 편입하겠다는 주장은 가당찮다. 국민의힘 소속 유정복 인천시장이 입바른 소리를 했다. “이제는 정치공학적인 선거 '표퓰리즘'을 퇴출시켜야 할 때다. 선거를 5개월여 앞두고 신중한 검토나 공론화 없이 ‘아니면 말고’ 식으로 이슈화하는 것은 국민 혼란만 초래하는 무책임한 일”이라는 말이 백번 맞다. 국가균형발전이라는 헌법적 가치는 어디로 갔나.

공매도 금지 조치도 그렇다. 경제위기 상황이 아닌데 정부가 공매도 전면 금지를 내놓는 전례가 없다. 세계 3대 투자자로 불리는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은 “공매도 금지 조치는 실수다. 이런 바보 같은 짓을 계속하기 때문에 한국은 메이저 국제 금융 중심지가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블룸버그까지 이번 공매도 조치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나온 것으로,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하고 있다. 공매도 금지는 개인투자자 표를 얻기 위한 금융 포퓰리즘의 하나로 볼 수밖에 없다.

가장 기가 막힌 건 식당과 카페에서 일회용 종이컵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려던 조치의 철회다. 환경부는 자영업자들의 비용과 인력 부담을 이유로 들지만 누가 봐도 자영업자들을 의식한 총선용 선심이다. 오죽하면 〈조선일보〉까지 “아무리 선거용이라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라고 비판하고 나섰을까.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를 조기 착공해 수도권 30분 통행권을 강원·충청까지 확장하고, 노후 도시 지원 특별법도 연내 통과시킨다고 한다. “돈으로 사면 될 거 아냐. 얼마면 될까. 얼마면 되겠냐?”라는 유명한 드라마의 대사가 생각이 난다.

무책임한 인기 공약 알면서도 따라가

누가 포퓰리스트일까. 이들의 특징은 제도에 대한 불신과 함께 기득권에 대한 적대감을 표출한다는 점이다. 정치인보다 비정치인이 포퓰리스트가 되었을 때 더 큰 인기를 누리는 것도 이유도 있다. 과거의 잘못된 정치에 대한 부채가 없어 현실 정치 비판에서 더 설득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포퓰리스트들의 의외의 특징이 권력의지다. 이들은 시대와 국민의 소명을 받아 마지못해 정치를 하지만 정치 참여 자체를 내켜 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 겉으로는 권력의지가 없어 보이는데도 출마를 굽히지 않는 강한 권력욕을 보여 주니 양면적인 권력의지를 가졌다고 하겠다.

물론 국민의 요구에 부합하는 정치를 하려는 포퓰리즘을 반드시 나쁘다고 매도할 수는 없다. 하지만 포퓰리스트가 무책임한 공약으로 인기를 얻게 되면 기존 정당의 후보들도 할 수 없이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되면 장기적으로 공익에 손해가 되는 정책이 그 사회를 지배하게 되기에 민주주의에 해악이 된다. 대표적으로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등에서 집권했던 남미 포퓰리스트들은 국가 재정을 파탄으로 몰았다.

요즘 포퓰리스트의 등장을 가져오는 가장 큰 요인은 매스컴의 발달이다. 포퓰리스트는 모두 매스컴을 기가 막히게 활용한다. 우리 사회가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냉소적이라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포퓰리스트에게 이끌릴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를 외면하지 마십시오. 벽에 대고 욕이라도 하십시오”라고 당부했다.

박종호 수석 논설위원 nleader@busan.com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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