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모룡 칼럼] 서울이라는 매직 서클
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다극적 국토 경영이 헌법 가치
행정수도도 서울 축소 못 해
서울·지방 이분법 사회 미래 없고
‘내국 난민’ 유랑하는 디스토피아화
동남권 형성, 미래 세대 위한 책무
또 다른 서울 가질 때 진짜 선진국
얼마 전에 아침 일찍 서울역에 내린 적이 있다. 마침 출근 시간대였는데 역사에서 쏟아져 나온 인파에 휩쓸려 지하철로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는데 마치 다른 세계의 경계를 넘어간 듯한 광경이라 오래도록 잔상이 남았다. 아, 서울은 우리 사회에서 확실히 다른 공간이구나. 그러니까 요한 하위징아가 그의 책 〈호모 루덴스〉에서 말한 ‘매직 서클’과 같이, 내가 사는 현실과 분리된 게임이 진행되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비단 쏟아지는 사람들과 밀려드는 군중만이 아니다. 그 내부의 사회적 장치와 설계도 뭔가 낯설기만 하다. 그러니 분주하게 그 내부의 규칙과 절차에 따라 일을 치르고 숨 가쁘게 경계를 나와서야 안심하며 내가 사는 부산으로 회귀하기를 반복한다.
한때 서울을 줄이거나 나누자는 주장이 비등한 적이 있었다. 사대문 안을 서울로 하고 나머지를 여러 개의 시로 분리하자는 발상이다. 물론 이게 제대로 공론화되지는 못하였다. 그 뒤에 행정수도를 따로 만든 일이 있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세종시로 인하여 서울이 축소되었다는 말을 아직 들은 적이 없다. 오히려 인근 대전과 충청을 흡수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하지만 수도인 서울 중심으로 우리 사회가 일극화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은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오래도록 공통감각으로 견지해 왔다. 바로 “국가는 그 균형 있는 개발과 이용을 위하여 필요한 계획을 수립한다”라는 헌법 120조 2항을 구현하려 했기 때문이다. 소위 균형 발전 혹은 분권이라는 굳은 합의가 여전하다. 일극이 아니라 다극으로 국토를 경영해야 함이 헌법적 가치이자 정신이다. 이를 위하여 지방자치를 열었고 공공기관의 분산도 진행하고 있다.
최근 김포의 서울 편입론을 접하면서 서울이라는 매직 서클이 벌써 수도권으로 확장되었음을 상상하며 충격을 받는다. 게임의 시공간처럼 수도권의 경계가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그러나 내가 느낀 서울이 현실이 아니듯이 이 또한 실재는 아니다. 현실은 게임의 세계와 달라서 훨씬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매직 서클을 따라 하듯이 감행한 김포 편입 선언은 서울 일극 체제의 선포이자 지방자치의 해체이며 균형 발전의 포기가 될 수도 있다. 그만큼 엄중한 사건이다. 현실의 역장(力場)은 게임과 달리 조심스럽고 힘겨운 과정인데, 흔히 우리가 말하는 서울 혹은 수도권이라는 말은 가상현실과 같은 추상일 뿐이다. 실제의 서울은 한강을 가운데 두고 남북으로 불균등한 계급 도시라 할 수 있다. 아마 역내 문제만 하더라도 엄청난 과제를 안고 있을 터이다. 그 구조적 모순을 확장으로 전가하는 일은 무책임하다. 서울을 포함하여 그것을 둘러싼 경기와 그 안에 있는 인천은 각기 다른 수많은 로컬의 집합이며 모두 그것대로 각기 생성하는 가치를 발현해야만 한다.
지금 우리는 서울 혹은 수도권의 게임이 전국을 뒤흔드는 매직 서클의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 아님을 안다. 서울은 축소되어야 하고 일극 체제는 다극 체제가 되어야 한다. 이게 지금의 시대정신이 아닐까 한다. 서울과 지방의 이분법에 사로잡힌 사회는 미래가 없다. 서울이 빨아들인 지방의 인력을 다시 수도권인 경기와 인천에 부려놓는 악순환으로 나라가 제대로 갈 수가 없다. 끝없는 지방소멸을 불러오고 고향을 잃은 내국 난민이 수도권이라는 공간 안에서 유랑하는 디스토피아가 그려질 따름이다. 그러니 오히려 지방이라는 말이 소멸하도록 애써야 한다. 각 지역의 고유한 지명이 거기서 사는 사람들의 신체와 분리되지 않는 미래를 실현하도록 해야 한다. 이게 바로 헌법적 가치이고 우리 사회의 견고한 시대정신이다.
이제 다시 메가시티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본디 메가시티는 일극 체제를 다극화하는 방안으로 등장하였다. 그러니 부울경 메가시티의 와해가 그만큼 뼈아픈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최근 ‘지방분권균형발전 부산시민연대’의 인식조사에서 부산시민은 정부의 지방시대 실현이라는 국정 목표에 53.4%가 공감하지만 48.1%가 현 정부 내에서 지방시대 실현이라는 국정 목표가 잘 이행되지 않으리라고 판단하였다. 잘 이행될 것이라는 응답은 41.2%에 그쳤다. 그만큼 실천의 의지와 노력에 신뢰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부울경 메가시티의 해체와 메가 서울의 주창이 가지는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이는 어느 한쪽의 정파적 판단이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 수도권 일극에 대응할 동남권 혹은 남부권의 형성은 헌법의 명령이자 미래 세대를 위한 기성의 책무이다. 그래서 가덕도 자연환경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신공항을 건설하고 혼신으로 2030부산엑스포를 유치하려는 게 아니겠는가? 서울만이 아니라 또 다른 서울을 여럿 가질 때 한국은, 세계와 경쟁하여 더 굳건한 선진국의 자리로 나아가며, 다음 세대가 안전하고 평화롭게 잘 살 수 있는 터전을 형성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