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새마을금고의 혁신
어린 시절 기억의 편린을 들추다가 아주 오래된 영상을 만난 적 있다. 마을 청년회장이 한 달에 한 번씩 장부를 들고 집에 들르곤 했다. 청년인지 아저씨인지 확실하지는 않다. 다만 지폐 두어 장이 오가고 무슨 통장에 도장이 찍히는 장면만은 잊히지 않는다. 돌이켜보니 동네에서 운영하던 마을금고였다. 1960~70년대는 일반인에게 ‘금융’ 개념이 약한 시절이었다. 마을금고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쌀과 돈을 모아 서로 빌려주던 일종의 계 모임에서 비롯됐다. 특히 농어촌처럼 은행이 드문 곳에선 사금융의 역할로서 긴요했다.
마을금고는 짧은 시간 전국에 퍼졌다. 저축과 대출의 선순환이 비결이었는데 더불어 생활 안정과 소득 증대를 가져왔다. 남은 돈은 국·공사채 매입에 쓰여 산업 발전에도 기여했다. ‘신용조합’ ‘재건금고’ ‘마을금고’로 혼용되던 명칭은 ‘새마을금고’로 통일된다. 법적 토대가 마련된 1983년의 일이다. 지역 새마을금고는 각각 별도의 법인으로 설립돼 독자적 인사 운용과 영업 토대를 갖는 것이 특징이다. 중앙회 역시 지역 금고의 연합체로 만들어졌다.
이후 전체 자산 규모는 가파르게 불어났다. 2000년 36조 원, 2013년 100조 원을 찍더니 지난해 말 284조 원까지 올랐다. 친서민 금융의 강점에 저금리와 느슨한 규제라는 뒷배가 있었다. 결국 부작용이 터지고 말았다. 몸집은 금융회사처럼 커졌으나 운영은 주먹구구식이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부실 금고에 따른 뱅크런(대규모 현금 인출) 사태가 속출했고, 임직원의 횡령·배임 등 비리 사건이 하루가 멀다고 일어났다.
14일 새마을금고 경영혁신안 발표는 이런 저간의 사정을 배경으로 한다. 중앙회 회장의 권한을 분산하고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한다는 것이 골자다. 개별 금고에 대한 감시·검사도 강화했다. 하지만 핵심인 감독권 이관이 빠져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감독권은 여전히 금융위원회가 아닌 행정안전부가 갖고 있다. 전국의 금고들은 정반대 입장에서 반발한다. 지역경제 기반의 금고 활동이 위축될까 걱정하는 것이다.
혁신안에 대해서는 정부 당국도, 새마을금고 측도 불편해하는 분위기다. 그만큼 민감한 사안이라는 뜻이겠다. 하지만 급선무는 국민 불신을 걷어내는 것이다. 안심하고 돈을 맡길 수 있게 건전성을 회복하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 서민의 벗이었던 새마을금고가 새로운 미래를 밝히려면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