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이렇게 해서 물가 잡겠나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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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 중심 물가안정책임제 운영
주요 품목 가격·수급 점검 관리
정부가 나서서 가격 통제하는 꼴

일시적 안정세 착시효과만 줄 뿐
슈링크플레이션 등 부작용 초래
공급 확대 등 종합 대책 마련해야

“질소를 샀는데 과자가 들어 있더라”라는 우스개가 유행한 적이 있다. 제과업체들이 포장지 안 내용물은 줄이고 대신 질소를 더 충전해 겉으로는 풍성한 것처럼 꾸민 데서 나온 말이었다. 그런데 요즘 비슷한 일이 기승을 부린다. 슈링크플레이션이 심심찮게 목격되는 것이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줄인다’는 뜻의 ‘슈링크(shrink)’와 물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기업이 제품 가격은 그대로 두면서 용량을 줄이는 식으로 가격 인상 효과를 노리는 행위를 말한다.

슈링크플레이션의 행태는 다양하다. 캔맥주나 통조림류는 슬그머니 용량을 줄이고, 냉동만두와 핫도그 등은 봉지 속 개수를 줄이는 식이다. 과즙 함량을 줄이는 주스가 나오는가 하면, 아예 음료수 병 모양을 가운데가 쑥 들어가게 바꾸어서 용량을 줄이는 사례도 있다. 고깃집에선 1인분 양을 축소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렇게 꼼수로 가격을 인상하면서도 소비자들에게는 제대로 알리지 않고, 이를 규제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내용물의 양을 줄이거나 품질을 떨어뜨린 사실을 고지할 의무가 국내엔 아직 없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3일에서야 겨우 슈링크플레이션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을 뿐이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씁쓸할 따름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뒤늦은 ‘검토’ 발언이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다. 정부는 지난 9일 범부처특별물가안정체계를 가동하고 각 부처 차관을 물가안정책임관으로 지정했다. 모든 부처 차관이 각자 소관 품목의 가격·수급을 점검하고 품목별 대응 방안을 마련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특히 농림축산식품부는 빵·우유 등 28개 주요 농식품 품목의 전담자를 지정했다. 해양수산부도 천일염 등 수산물 7종을 집중 관리키로 했다. 행정안전부 차관이 중심이 돼 지도·협의하는 지자체별 물가관리관도 운영하기로 했다.

이러한 방식이 물가안정에 얼마나 효과를 가져올지는 의문이다. 사업자 입장에선 설탕, 소금, 밀가루 등 원재료뿐만 아니라 전기요금, 가스요금 등 운영비까지 오르는 상황에서 정부의 가격 동결 압박이 심해지면 어쩔 수 없이 꼼수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우려가 현실이 돼 나타난 것이 바로 슈링크플레이션인 것이다.

각 부처 차관이 물가안정책임관이 돼 소관 품목의 물가를 관리토록 하는 방식은 기시감이 든다. 10여 년 전 이명박 정부 때도 물가를 잡겠다며 52개 품목을 지정관리했다. 효과는 없었다. 정책 시행 초기에는 기업들이 정부의 눈치를 보며 가격 인상을 자제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관리가 풀어지자마자 해당 품목들의 가격이 대폭 뛰었던 것이다.

품목별 물가 관리는 일종의 가격 통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가격 통제로 물가를 잡은 전례가 없다는 게 상당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정부의 통제로 기업들이 가격 인상을 미루다 보니 일시적으로 가격이 안정된 것처럼 보이는 착시효과만 있을 뿐이며, 나중에는 기업 이윤이 감소한 만큼 급격히 가격을 올리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요컨대 물가안정책임관 지정은 결국 미봉책에 그칠 뿐이라는 이야기다. 이미 장기화된 물가를 잡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종합적으로 마련하고 가용할 수 있는 수단을 총동원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 비축 물량을 제때 풀거나 할당관세를 인하하는 등 공급을 확대함으로써 먹거리 물가를 잡는 한편, 경기침체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통화량을 정밀하게 조정하는 식의 대처가 요구된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이달 들어 물가 상승세가 소폭이나마 꺾일 것으로 내다봤지만, 실생활에서 물가 상승 체감도는 여전히 고공행진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의 가격이 무섭게 치솟고 있다. 먹을거리는 물론 버스, 비누, 생리대, 심지어 아기 기저귀까지 안 오르는 게 없다. 얇아진 지갑으론 감당하지 못할 이러한 물가 폭등에 서민들은 속만 태울 뿐 어찌할 방도가 없다.

정부가 고물가 다잡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당장 급한 불부터 끄자는 생각으로는 오히려 역효과만 가져올 뿐이다. 일각에선 정부의 현재 물가 안정 대책이 내년 4월 총선을 겨냥한 땜질식 처방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고물가에 따른 국민적 불만을 누그려뜨려 정부·여당에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하려는 목적이 깔려 있다는 의심이다. 설마 사실일까마는, 여하튼 업체들은 야바위식 꼼수로 가격 인상을 꾀하고 정부는 정부대로 눈속임 대책으로 일관한다면 나라의 미래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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