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진의 여행 너머] 술 권하는 축제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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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라이프부 차장

얼마 전 일본술 ‘사케’를 취재하러 규슈를 방문했다. 후쿠오카현 남부 소도시 지쿠고의 사케 축제를 찾았을 때 두 번 놀랐다. 첫 번째는 행사 규모. 우리나라 지자체 축제에 비하면 행사장이 조촐했고, 방문객도 적당히 북적이는 정도였다. 두 번째는 술을 소개하는 방식. 9개 부스가 있었지만 양조장별 부스가 아니었다. 9개 양조장 술을 한데 모아 청주·소주·리큐르 등 주종별로 방문객들에게 선을 보였다. 양조장마다 자신의 술만 앞세우지 않고, 골고루 마셔 보길 권했다.

작은 규모지만 사이좋게 10년 가까이 행사를 이어 온 비결은 축제 탄생 배경에 있다. 철도 역사 인근에 현립 문화예술회관이 들어선 뒤 지역문화 재조명 사업의 하나로 축제가 추진됐다. 관의 제안에 업계도 호응했고, 양측이 머리를 맞대 행사를 기획했다고 한다. 지역에서 각개 전투하듯 명맥을 이어 가던 양조장 9곳은 술을 알릴 수 있는 기회라 여겨 힘을 합쳤다. 없는 술 곳간끼리 경쟁보다 협력을 택한 것이다.

일본 양조장은 길게는 300~400년, 짧아도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녔다. 교토 후시미, 효고현 나다, 히로시마현 사이조 등 사케 고장으로 알려진 지역만 여럿이다. 오랜 전통을 바탕으로 새 술 빚기를 시작하는 10월이나 새 술이 완성되는 이듬해 2~3월에 전국 곳곳에 사케 축제가 열린다.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규슈에서도 축제가 열린다는 건 알려진 것 이상으로 사케의 저변이 넓고 탄탄하다는 방증이다.

우리나라 전통주는 어떤가. 10여 년 전부터 전통주 붐이 일고, 지역특산주·소규모주류제조면허 같은 제도가 생기면서 전국적으로 신규 양조장이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양적 팽창에 비해 시장의 성장세는 더디다. 청년들이 술도가를 창업하고, 온라인 매장을 통해 전통주를 접하는 2030세대도 늘고 있지만, 여전히 탁주·약주는 어르신 술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꽤 괜찮은 술을 출시하더라도 판로 개척에 어려움을 겪는다. 우리 술과 대중 사이의 접점 늘리기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컨벤션 행사장에 전국 전통주를 모으는 ‘주류박람회’ 같은 일회성 행사로는 부족하다. 일본 사케 축제처럼 지역 양조장과 지역민이 중심이 되는 방식으로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 부산만 해도 쌀·물·누룩 위주의 전통 방식으로 술을 빚는 양조장이 10여 군데 있다. 접근성이 좋은 광안리 해변이나 해운대 구남로에서 축제의 장을 펼쳐 보는 건 어떨까. 물론 그저 그런 술판이 돼선 안 된다. 민과 관이 힘을 합친다면, 전통주 교육·체험 프로그램, 특산 음식과의 페어링, 건전한 술 문화 캠페인 등 판 위에 깔 콘텐츠는 많다. 지역 활성화를 고민 중인 지자체라면, 우선 부산 술도가를 찾아 술 한 잔씩 드셔 보시라.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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