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은의 문화 캔버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장
지붕이 거꾸로 된 인도 작가 설치 작품
피지배 문화 전통의 역사적 승리 상징
문화제국주의 뒤집는 웅장한 역설 눈길
어느 집 지붕 한가운데가 무너져 내렸을까, 지붕 전체가 거꾸로 뒤집혀 있다. 멀리서 보기엔 뒤집힌 지붕 위에 붉은 기와들만 줄지어 걸려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기이한 자세의 조그마한 사람들 몇몇이 기와 위에 붙어 있다. 기와들도, 그 위의 인물상들도 유약을 바르지 않고 흙의 질감과 색을 그대로 살려 불에서 구워낸 붉은 테라코타 도자이다. 기왓장 하나 정도 작은 키의 인물들은 거대한 지붕 구조물과 대비를 이루면서 애처롭게 보이기도 하지만, 그들은 우리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초연하게 자기만의 세계에 몰두해 있는 것만 같다. 이것은 유럽, 미국, 중국 등 전 세계에서 개념미술 작업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인도 출신 탈루 L N 작가의 작품으로 지금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 중앙홀에 설치되어 있다. 이 작품의 제목은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Veni Vidi Vici)’이다. 이는 카이사르가 남긴 승리의 명언이다. 여유만만 자랑스럽게 승전보를 전했던 카이사르의 모습과는 영 딴판으로 보이는 이 작품에서 제목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로마 공화정 말 정치가이자 장군이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갈리아 지역을 지배하며 세력을 넓혀갔지만, 자신의 정적이던 폼페이우스와 원로원의 모함으로 로마 집정관과 갈리아 총독 자리에서 쫓겨난다. 이에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를 치기 위해 로마와 갈리아 지역 경계인 루비콘강을 건너 로마로 진격하게 되는데, 이는 로마법을 어기는 반역이었다. 이 사건으로부터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른다는 의미의 ‘루비콘강을 건너다’라는 말이 유래했다. 폼페이우스는 카이사르를 피해 당시 로마 식민지였던 이집트로 도망갔고, 클레오파트라와 왕위를 두고 다투던 프톨레마이오스는 폼페이우스를 암살해 카이사르에게 바쳤지만, 결국 자신도 카이사르에게 제거되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의 도움으로 파라오가 되었고, 둘은 사랑에 빠져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때 소아시아 오리엔트군의 반란 소식을 듣고 진압하러 갔던 카이사르는 단 5일 만에 반란군을 격파했다. 이때 그가 전한 승전보가 바로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였다. 사족 없이 간결하면서도 전투의 모든 극적인 순간들을 압축해 표현한 이 세 문장은 이후에 많은 곳에서 차용되었다.
200년 전 스위스 바젤 기독교 선교사들은 인도 남부 해안 도시 망갈로르에 타일 공장을 지었는데, 이곳에서 탈루 작가는 어린 시절을 보냈고 지금도 자주 머무른다고 한다. 선교사들은 힌두교도 현지인들을 타일 공장에 취업시켜 주는 대신 기독교 개종을 강요했고 그 과정에서 가혹한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타일 공장은 영국에 인수되어 ‘커먼웰스’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설치 작품의 타일 뒤편에도 커먼웰스라는 브랜드 명칭이 찍혀 있다. 영국 식민지 시기 영국인들이 운영했던 뭄바이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의 민속학 전시에는 속세를 떠난 하타 요가 수행자 모습을 재현한 조각상들이 전시되었다.
하타 요가는 명상과 신체 조절을 통해 육체와 정신의 한계를 모두 극복하고자 한다. 하타 요가가 좀 더 대중적인 다른 요가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자기 통제의 정도에 있다고 한다. 하타 요가 수행자들은 자신을 통제하기 위해 한쪽 다리로만 서 있거나 물구나무를 서는 등 극단적 동작들을 몸이 마비될 때까지 오랫동안 지속하기도 한다. 당시 요가 인물상은 영국인들에게는 희한한 구경거리이자 볼거리로서 피식민 문화의 상징으로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그런데 지금 전 세계인들은 요가를 동경하고 즐긴다. 코로나 이후엔 자연의 회복과 정신의 치유 등을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요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인기는 전 세계적으로 꾸준히 상승 중이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는 통상적으로 식민 지배 세력의 문화가 피식민지 문화를 지배하고 동화시키는 문화제국주의 경향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피식민 문화였던 인도의 요가가 식민 세력인 서구 유럽을 점령한 역전된 상황이다.
아마도 이 작품에서 뒤집힌 지붕은 무너진 국가를, 그리고 서구 유럽인들이 공장을 세워 생산하게 한 타일은 식민 지배의 역사와 기억을 상징할 것이다. 그렇다면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는 세상 무심하게 타일 위에서 요가 자세를 고수하고 있는 인물들이 마음속으로 되뇌고 있는 말이 아닐까. 정신과 육체의 수양을 통해 해탈의 경지에 이른 요가 수행자에게, 그리고 식민 지배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종교, 철학, 풍습들을 여전히 잘 간직하고 있는 인도인들에게 제국주의가 휩쓸고 간 몇십 년의 시간은 카이사르의 5일처럼 순식간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최후의 승리자는 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