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전창진 감독과 최철권에 관한 기억

변현철 기자 byunh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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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최철권의 ‘신들린 97득점’
농구 국내 한 경기 개인 최고 기록
허재, 강동희, 김유택, 한기범 포진
부산 기아, 프로 창단 그해 우승컵
지난 8월 연고지 옮긴 부산 KCC
올 시즌 강력한 챔피언 후보 꼽혀

10분씩 4개 쿼터로 나눠 40분간 뛰는 농구 경기에서 한 사람이 최대 몇 점까지 넣을 수 있을까. 기자가 2010년 〈부산일보〉 스포츠부에서 농구 담당으로 일할 때 한 외신 기사를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연도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미국의 한 여고생 농구 선수가 한 경기에서 113점을 몰아넣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는 뉴스를 봤기 때문이다. 이 기사를 보는 순간 기자의 고교생 시절, 믿기지 않았던 한 스포츠 뉴스가 불현듯 기억났다.

1987년 10월, 광주에서 열린 전국체전 농구 일반부 남자 경기에서 전북 선발로 출전한 최철권이 부산 선발과의 맞대결에서 혼자서 무려 97득점을 터뜨렸다는 소식이었다. 이날 전북 선발은 135-95로 승리했고 최철권은 상대 팀인 부산 선발의 득점보다 더 많은 점수를 뽑았다. 최철권의 97득점 중 3점 슛이 무려 18개, 총 54점에 달했다. ‘신들린 슈터’의 이날 기록은 한국 농구의 한 경기 개인 최다 득점으로 공식 인정됐고, 지금도 프로와 아마를 통틀어 깨지지 않은 대기록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기자가 2010년 당시 프로농구 부산 KT 소닉붐 사령탑이었던 전창진 감독과의 첫 만남에서 꺼낸 첫 마디는 “전 감독님, 최철권 선수를 잘 아시죠?”였다. 그러자 전 감독이 “예, 잘 압니다. 고려대 선수 시절 1년 선배였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어 전 감독은 “변 기자가 최철권 선배를 어떻게 알죠. 농구에 관심이 많은 열성 팬이군요”라고 칭찬의 말을 해준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2010-2011시즌 부산 KT는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지금은 부산을 연고지로 하는 팀이 KCC 이지스로 변했지만 사령탑은 13년 전과 같은 전창진 감독이 맡고 있다.

부산 KCC와 전 감독을 생각하니 최철권의 97득점이 문득 떠올랐다. 그래서 농구의 한 경기 개인 최다 득점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해봤다.

이색 다득점 기록에 ‘농구 대통령’ 허재 전 전주 KCC 감독이 역시 빠지지 않았다. 허 전 감독은 중앙대 시절이었던 1987년 10월 단국대와의 경기에서 무려 75점을 쏟아부으며 팀의 99-97, 역전승을 이끌었다. 허 전 감독 역시 이날 경기에서 중앙대의 전반 득점인 54점을 독식했다. 최철권의 기록이 이미 승패가 결정난 상태에서 마음껏 득점에만 치중할 수 있었던 반면, 허 전 감독은 접전 상태에서 팀을 역전승으로 이끈 다득점이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었다.

국제 대회에 나가 올린 최다 점수 기록은 이충희 전 LG 감독이 1987년 3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프리팀컵 국제농구대회에 현대 소속으로 기록한 67득점이었다. 이 전 감독은 ‘천재 슈터’로 불리며 ‘전자 슈터’였던 삼성의 김현준, 중앙대 허 전 감독과 함께 1980~90년대 농구대잔치를 주도했던 스타 플레이어였다. 당시 농구대잔치의 양대 산맥을 이뤘던 실업 팀인 삼성과 현대에 맞서 중앙대의 돌풍은 대단했다. 1997년 프로농구가 출범하면서 중앙대 출신 허 전 감독과 강동희, 김유택, 한기범이 주전을 이룬 기아 엔터프라이즈가 그해 부산을 연고지로 창단됐다. 기아는 창단 그해 종합 우승을 거머쥐며 부산에 농구 열풍을 일으켰다.

프로가 출범하고 난 뒤에 수립된 최다 점수 기록은 2003-2004시즌 마지막 날인 2004년 3월 7일 울산 모비스의 우지원이 LG전에서 기록한 70득점(3점 슛 21개)이다. 역대 2위 기록은 문경은(당시 전자랜드)이 같은 날 TG 삼보전에서 22개의 3점 슛으로만 올린 66점이다. 그러나 이 기록들은 과열된 3점 슛 타이틀 경쟁 속에서 상대편의 ‘봐주기’와 소속 팀의 ‘밀어주기’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면서 빈축을 사기도 했다.

미국프로농구(NBA)에서는 1962년 3월 2일 열린 경기에서 필라델피아 워리어스(현재의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 챔버레인이 뉴욕 닉스전에서 100득점을 올린 것이 최다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는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NBA 역사 상 가장 경이로운 기록이다.

지난 8월 연고지를 부산으로 옮긴 KCC는 서울 SK와 함께 2023-2024시즌 KBL 리그의 강력한 우승 후보로 손꼽힌다. KCC는 자유계약(FA) 시장에서 리그 최정상급 포워드 최준용과 가드 이호현을 영입했다. 기존 이승현, 라건아, 허웅에 최준용이 가세했고, 군 전역을 앞둔 송교창까지 합류하면서 국가대표 라인업으로 불릴 정도의 ‘슈퍼 팀’이 됐다.

그래서인지 2023-2024시즌에 부산 KCC가 정규리그 우승은 물론 챔피언결정전에서 승리해 구겨진 부산 프로 스포츠의 자존심을 회복시켜 주길 기대한다. 올 시즌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가 정규리그 7위에 그치며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해 부산 팬들의 실망감이 몹시 컸다. 올해 연고지를 부산으로 옮겨 부산 시민들에게 큰 기쁨을 준 부산 KCC가 좋은 성적까지 거둔다면 부산 프로 스포츠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변현철 스포츠부장 byunhc@busan.com


변현철 기자 byunh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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