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공영방송 위기, 내적 혁신으로 극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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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행 동명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공영방송이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공영방송은 이윤 추구보다는 공공의 이익을 도모하는 방송을 말한다. 공영방송 위기의 원인은 외부에서도 내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외적 요인은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이 초래한 미디어 환경의 변화이다. 방송 시청이 감소하고 시청자가 디지털 플랫폼 기업이 제공하는 스트리밍 서비스(OTT)로 대거 이동하는 양상으로 시청자의 소비 패턴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 내적 요인은 미디어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 부족, 혁신에 저항하는 보수적인 태도, 임직원의 윤리 불감증, 경영적 자구노력 부족 등 다양하다. 특히 정파성과 편향성은 공영방송의 위기를 불러오는 주요한 내적 요인 중 하나이다.

공영방송은 방송의 공공성과 공익성을 프로그램 편성과 운영의 기본 철학으로 하는 방송제도이다. 공공성과 공익성은 공영방송이 특정 집단의 사적 이익이 아닌 일반 대중 시청자의 공적 이익 추구를 통해 여론의 다양성에 기여할 것을 요구하는 절대가치이다. 방송제도가 역사적으로 공영방송의 주 수입원을 광고가 아닌 국민의 TV 시청료나 정부 보조금과 같은 공적 재원으로 운영하도록 보장해 온 근거가 방송의 공공성과 공익성이다.

공영방송 신뢰 추락으로 시청료 저항

일부 선진국도 시청료 폐지·인하 추세

분리징수를 ‘언론탄압’ 표현해선 안 돼

국민 신뢰 위해 방송사 내부 변화 필요

방송의 공공성과 공익성에 의문이 제기될 때 공영방송은 존립의 당위성을 잃게 된다. 나아가 TV 수신료를 포함한 공적 재원의 지원이 폐지되거나 감소하는 위기 국면에 처할 수밖에 없다.

공영방송의 입지가 좁아지는 현상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나타나고 있다. 프랑스는 2022년 하반기 TV 수신료를 폐지하였으며, 현재 오후 8시 이후 광고의 완전 폐지 여부까지 논의되고 있다. 프랑스 공영방송사는 불공정 경쟁을 사유로 민영방송연합에 의해 고발당하고 있고, 관리·감독을 위한 지주회사 설립이 가시화되고 있기도 하다.

영국은 오는 2027년 말 이후 수신료 폐지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는 바람에 전체 수익의 약 70% 정도를 시청자의 수신료로 충당하고 있는 BBC의 미래가 불투명한 실정이다. 이런 위기 상황 아래에서 BBC는 정리해고와 같은 인적 구조조정, 프로그램 폐지 및 기타 비용 절감 계획을 통해 내적 쇄신과 자구노력을 단행하고 있다. 하지만 수신료 폐지가 현실화할 경우 BBC는 창사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BBC의 존폐 문제를 넘어 세계 각국의 수신료 제도와 공영방송 제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면서 세계 공영방송 역사에 대사건으로 기록되는 일이 될 것이다.

공영방송의 위기로 인해 수신료 문제가 여러 나라에서 변화를 겪고 있다. 수신료 징수에 대한 저항은 미디어 환경 변화가 불러온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소수의 채널만이 존재하던 방송 환경에서 수신료 징수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나, 채널 선택의 폭이 확장한 지금의 미디어 이용자에게 공영방송은 이제 필수가 아닌 선택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NHK가 수신료를 2020년 2.5% 인하한 데 이어 올해에도 10% 인하하기로 결정한 것도 시청자의 태도 변화로 인해 떨어진 수신료 징수율에 대응하는 고육지책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수신료는 1981년 징수제도가 도입된 이래 40년 넘게 정치적 논란과 함께 우여곡절을 겪으며 기형적인 형태로 운영되어 왔다. 월 2500원의 수신료는 KBS가 2265원, 교육 공영방송사인 EBS가 70원을 각각 할당받으며, 징수 위탁사업자로 지정된 한국전력이 165원을 가져가는 구조이다. EBS에는 고작 2.8%를 할당하면서 한전이 징수 수수료 명목으로 가져가는 6.2%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납득할 수 없는 수신료 배분 원칙도 합리적인 재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윤석열 정부는 올 7월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시청료와 전기요금의 통합징수를 폐지하고 수신료 분리 납부를 가능하게 하였다. 이 때문에 분리징수로 인한 수신료 수익의 감소가 전망되는 가운데 KBS 등 공영방송의 재정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우리나라 시청자들의 시청료에 대한 저항이 커진 가장 큰 원인으로는 공영방송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추락한 것이 꼽히고 있다. 세계적 동향과 추세로 볼 때 우리 정부의 시청료 분리징수 결정을 ‘언론탄압’이나 ‘언론장악’이라고 비판하는 일부에서의 표현은 어불성설이며, 구호와 선동에 다름 아니다. 공영방송은 자체적으로 공익성과 공영성에 대한 국민의 비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 현재의 위기를 신뢰 회복과 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마땅하다. 공영방송은 현 위기의 해결책을 우선적으로 내부에서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제대로 된 변화를 위해 보여 주기식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자세로 내적 혁신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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