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주부산 러시아 부영사관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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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사나 두드니크 주부산러시아총영사

올해 주부산 러시아 총영사관은 개관 30주년을 맞이하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부산에 최초로 세워진 러시아영사관의 역사를 한번 살펴보기로 한다. 러시아 고문서 보관소에는 1903년부터 1923년까지 부산에서 업무를 이어 나갔던 러시아 부영사관에 대한 자료들이 잘 보존돼 있다. 조선과 러시아는 1884년 7월 7일에 조러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해 정식으로 국교를 수립했다. 본래 러시아 부영사관은 1899년 마산에서 개관했으나, 부산이 주요 항구로 자리 잡고, 정치·경제적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부영사관을 부산으로 이전했다.

1903년 가을, 주마산 러시아부영사 G.A. 코자코프는 영사관 건물을 건축하기 위해 미국 국적인 일빈으로부터 부산의 토지를 매입했다. 부지는 우뚝 솟은 가파른 산언덕에 위치했다. 그곳에서 항만 전체와 넓은 바다가 펼쳐졌으며 도보로 10분 거리에 경부선 철도역과 연락선이 정박하는 부두가 있었다. 조금 아래쪽에는 세관 건물이 있었다. 전체 면적이 28.197㎡에 달하는 이곳에 사무실, 부영사 집무실, 응접실, 식당, 침실 및 화장실 세 개, 간이식당과 창고, 그리고 지붕은 기와 또는 석판을 얹은 1층짜리 벽돌 건물로 설계되었고, 또한 통역인을 위한 작은 ‘한국식’ 부속건물도 지으려고 했다. 1923년 부영사관이 폐쇄될 무렵, 영사관 건립을 위한 모든 준비가 완벽히 갖춰져 있었다. 그러나 부지 둘레를 따라 돌로 만든 옹벽까지 세워졌지만, 아쉽게도 영사관 건물은 건축되지 못했다. 그 당시 러시아 부영사관은 사코모 오푸사타로라고 하는 사람에게 임차한 건물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1935년 부산에 있었던 러시아 소유의 토지는 모두 팔리게 된다.

1903년부터 주마산 러시아 부영사 G.A. 코자코프가 부산 부영사관의 업무를 담당했고, 1906년에 F.I. 바실리예프는 주부산 러시아제국 영사로, 1915년 V.A. 스코로두모프 부영사가 그의 자리를 이어갔다. 가장 많은 정보가 남아 있는 것은 표도르 이바노비치 바실리예프이다. 그는 1862년 9월 19일에 태어났으며, 페테르부르크대학교 ‘동양어학부의 중국-만주-몽골 전공을 수료한’ 전문 동양학자였으며, 한반도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에서도 활동했다. 러시아 부영사들이 보고한 문헌에 따르면, 당시 러시아 극동과 한국의 남부 지역 간 제법 활발한 교역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1913년부터 1915년까지 부산항을 통한 수출량을 기준으로 극동 러시아는 일본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블라디보스토크로 수출된 물품에는 쌀, 소금, 생선과 건어물, 담배와 다양한 약재들이 있었고, 부산으로 수입된 주요한 품목에는 연어를 비롯한 생선류, 미역, 비료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특히, 소금에 절여지거나 신선한 형태로 수입된 청어가 큰 인기를 끌었는데, 한국인들은 명절이나 결혼식 또는 장례식과 같은 온갖 축일과 행사에 러시아산 청어를 즐겨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한국 상인들은 성냥에 사용되는 사시나무, 각종 유제품, 창문 유리 등의 러시아 제품을 수입하길 원했다. 반대로 이들은 해산물 외에 생선과 꽃게 통조림, 과일, 소금, 콩, 돗자리, 나무와 대나무로 만든 제품, 바구니, 종이와 담배 등의 수출도 제안했다. 부산에서 근무하였던 러시아 영사들은 한지의 품질을 특별히 높게 평가했는데, 강도가 좋고 섬유질이 많아 추위를 잘 막아낼 수 있어 러시아에서 수요가 많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1916년 부산에서 ‘동아시아무역연구회’가 조직돼 그해 8월, 회원 5명이 러시아와의 무역 환경을 살펴보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롭스크로 떠난 기록도 남아 있다.

이렇게 러시아 고문서 보관소에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20세기 초 러시아 부영사관의 부산에서의 활동을 간략히 소개해 보았다. 백여 년 전에도 지정학적으로 가까웠던 러시아 극동지역과 부산은 활발하게 교류해 온 좋은 이웃이었다. 부산 시민들에게 흥미롭게 다가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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