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개혁, 우리를 더 나은 사회로 데려간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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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연금책 / 김태일

국민연금 향한 '국민적 의구심' 시대
정부 '맹탕' 연금 개혁안에 비판 거세

가입 기간 늘려 수급 직전까지 납부
보험료 올리고 받는 돈 줄여 재정 건전화
현황 공유에서 출발 공론화 과정 필요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달 27일 서울 정부서울청사에서 제5차 국민연금 종합 운영계획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달 27일 서울 정부서울청사에서 제5차 국민연금 종합 운영계획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연금 개혁이 올해 ‘뜨거운 감자’가 되리라는 것은 일찍부터 예상된 바였다. 국민연금법이 5년마다 국민연금 재정 추계 결과를 발표하고 재정 안정화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하라고 규정하고 있어서다. 첫 추계가 2003년에 이뤄져 끝자리가 3과 8인 해마다 추계 결과와 필요한 조치를 발표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언제 고갈될지 모른다”는 소문이 인터넷과 에스엔에스를 떠돈다. 일부에서 “차라리 안 내고 안 받겠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이대로면 2050년대 중반이면 기금이 고갈된다. 연금 제도가 유지되려면 보험료율이 30% 가까이 되어야 한다니 청년세대는 불안하고 또 불편하다.

정부가 최근 국민연금 개혁안을 내놓았다. 그런데 보험료율·수급개시연령·소득대체율 등 구체적인 수치가 모두 빠져 ‘맹탕’ 연금 개혁안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연금 개혁은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3대 개혁(연금·노동·교육 개혁) 중 하나고, 윤 대통령은 “개혁은 인기 없는 일이지만, 회피하지 않겠다”고 말해왔는데 말이다. 지금은 집권 5년 내내 국민연금 개혁을 외면한 문재인 전 대통령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해야 할 때다.

대개 정부가 국민연금 개혁에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가 있다. 연금 개혁은 ‘코끼리 옮기기’에 비유된다. 규모가 크고 이해관계가 단단히 뿌리내린 탓에 개혁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코끼리에 밟혀 죽기도 한다(정권이 바뀌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래도 코끼리가 병들어 죽을 게 뻔하다면 힘들어도 옮겨야 하고, 옮기기로 했으면 성공해야 한다. <불편한 연금책>의 저자인 고려대 행정학과 김태일 교수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재정 전문가로 현재 고려대 고령사회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0년부터 좋은예산센터 소장도 맡아 정부 예산을 감시하고, 2015년에는 공무원 연금 개혁에 참여했다. 연금 개혁에 대한 그의 이야기는 믿고 들을 만하다.


<불편한 연금책> 표지 <불편한 연금책> 표지

사실 국민연금을 향한 ‘국민적 의구심’에는 이유가 있다. 우선 우리 국민연금이 상대적으로 가입 기간이 짧고, 사각지대도 넓어 노후 소득 보장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게다가 현재의 연금은 내는 것의 두 배를 노후에 받도록 설계되어 있어 노령화와 저출생으로 위기에 봉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노년층은 노후 보장에 턱없이 적은 액수가 불만이고, 젊은 세대는 부담만 커지고 나중에 혜택은 못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총체적 난국에 몰린 국민연금이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다. 첫째, 좀 더 많은 사람이 더 오랫동안 보험료를 내게 하는 것이다. 둘째, 보험료를 올리고 나중에 받는 돈은 줄이는 재정 건전성 개선이다. 취약 계층과 사각지대를 없애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게 하고, 미래 기금을 통해 세대 간 공정성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방법도 있다. 저자는 가입 기간을 늘리기 위해 현재 18~59세까지 보험료를 내는 현행 방식을 고쳐 수급 연령(64세) 직전까지 납부하도록 하자고 제안한다. 정년 연장 같은 사회적 합의로 이어지는 대목이다. 군 복무 기간 전체를 보험료를 낸 것으로 인정하거나 ‘출산 크레딧’ 확대 역시 정부의 의지가 필요해 보인다.

연금개혁은 대다수 사람의 노후 소득, 그리고 재정의 지속 가능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에 가장 중요한 복지와 재정 과제이다. 연금 개혁은 중간에 정권이 바뀌어도 이어받아 완성해야 하는데 지금 같은 정치 상황에서 그게 가능할까. 국민연금 가입자, 특히 젊은 세대의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과 불만은 상당 부분 국민연금에 관한 정보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데 기인한다. 신뢰는 솔직함에서 시작한다. 우리 연금 개혁이 성공하려면 연금을 둘러싼 ‘사실들’을 널리 공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 보인다. 현황 공유에서 출발한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 이 책에는 이 밖에도 퇴직연금과 기초연금 구조 개선안과 공무원연금 등 특수직역연금에 관한 개혁 방안 등이 담겨 있다. 한국 연금 제도의 나아갈 방향에 대한 총체적인 이정표라고 하겠다.

저자는 우리의 연금 체계가 엉망인 이유 중 으뜸이 국민의 무관심이라고 질타한다. 연금은 우리 모두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서문에서 맛집 탐방기처럼 흥미로울 리는 만무하지만 많은 사람이 읽기를 바란다고 썼다. 연금 개혁은 우리를 더 나은 사회로 데려갈 수 있다. 김태일 지음/한겨레출판/364쪽/2만 3000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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