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은 뇌의 병인가, 마음의 병인가?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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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 / 수재나 캐헐런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 표지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 표지

약 50년 전 스탠퍼드 대학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로젠한은 발칙한 실험 하나를 계획한다. 정상인 8명을 미국 각지의 정신병원으로 보내 미친 척 의사들을 속여낼 수 있는지 테스트한 것. 모든 병원은 이들을 정신질환자로 오진했고, 이들은 평균 20일 이상 병동에 수감됐다.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는 이 정신 나간(?) 실험의 이면을 추적한 기록이다. ‘뉴욕 포스트’의 촉망받는 기자였던 저자는 스물네 살의 나이에 끔찍한 정신질환 오진을 경험했다. 잘못된 정신질환 치료는 물론 심지어 정신병원 강제 수감의 위기에 처했지만, 한 의사의 끈질긴 노력으로 오진임을 밝혀낼 수 있었다. 이후 저자는 이러한 오진 사례가 적지 않음을 알고, 근본적인 의문을 품게 된다. 과연 현대 의학이 정상인과 비정상인(정신질환자)을 구분할 수 있는가. 의문은 로젠한의 실험 동기와 맞닿는다.

다만 저자는 로젠한의 실험에 마냥 맞장구치지는 않는다. 오히려 실험 과정의 허술함을 밝히는데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그 중 하나가 실험의 방법론적 결함이다. 환자가 가짜 증상을 호소할 경우, 의사가 가짜 증상에 맞춘 진단을 내리는 것은 환자의 문제이지 의사의 문제가 아니라는 논리다. 그 외에도 실험 과정의 비도덕성, 비신뢰성 등이 수많은 자료와 함께 지적된다. 로젠한의 실험을 통해 현대 정신의학의 맹점을 적나라하게 파헤쳐주길 기대하는 독자에겐 읽는 내내 조급증이 날 정도다. 그래서 로젠한이 문제인가, 정신의학이 문제인가.

조급증을 애써 억누른 채 책장을 넘기다보면 여러 개의 물음표가 뱀처럼 스멀스멀 무릎을 타고 허벅지를 기어오른다.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어느새 ‘비정상은 과연 병리(病理)적 현상인가’라는 또다른 질문으로 이어진다. 정신장애를 병이 아니라 사회적 낙인으로 보는 시각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 과거 동성애는 정신적 결함, 즉 병으로 이해됐다. 그러나 지금은 개인적 취향의 문제로 여겨진다. 병이 고쳐진 것이 아니라 사회적 낙인이 해체된 것이다.

거창한 사회적 낙인까지 들먹일 필요도 없다. 사소한 선입견만으로도 정상인을 비정상인으로 만들 수 있다. ‘뉴욕 월드’의 한 기자는 악명 높은 여성 정신질환자 보호수용소의 실상을 취재하라는 명령을 받고 (그 또한) 미친 척 수용소에 잠입한다. 물론 성공이다. 그리고 그는 병원에 들어가자마자 미친 척 구는 것을 그만 뒀다.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말하고 행동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더 정상적으로 말하고 행동할수록 더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다.(본문 중)’ 이미 ‘비정상’이라고 규정된 사람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정신질환을 병리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뇌 과학이 발달하면서 이러한 주장은 더욱 힘을 얻고 구체화된다. 정신질환 치료를 위해 특정 뇌 조직에 전류를 흘리는 등 다양한 신체적 요법이 시도된다. 1950년대 동성애를 치료하기 위해 사용되던 낡은 방법론이 과학의 발달과 함께 화려하게 귀환한 것이다.

애석하게도 책은 마지막까지 어떠한 결론도 내리지 않는다. 정신질환이 뇌의 병인가, 마음의 병인가.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도 ‘흰 말 엉덩이나 백마 궁둥이나, 그게 그거지’ 싶다. 과연 정신의학에 우리의 정신을 맡겨도 될 지 고민하는 만드는 책. 그런 중에도 단 한 가지만큼은 보다 명료해진다. 정신질환의 정체가 무엇이든, 낙인이나 선입견이 정신질환보다 더 무서운 이 사회의 병이라는 점이다. 수재나 캐헐런 지음/북하우스/500쪽/1만 9800원.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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