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오픈AI '막장 드라마'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소싯적에 게임 좀 해봤다는 사람치고, ‘헤일로(HALO)’를 모르는 경우는 없다. 거대한 액션과 모험, 상상력이 가득한 게임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 게임을 원작으로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미국 드라마 ‘헤일로’는 2552년 미래에 외계 종족과 전쟁이 배경이다. 지구에서 가장 유능한 과학자이면서도 권력욕의 화신인 핼시 박사(나타샤 맥켈혼 분)는 인간을 무기화한 마스터 치프(파블로 슈라이버 분)에게 인공지능(AI) 코타나를 삽입한다. 핼시 박사는 “코타나가 있으면 인류 최고의 무기인 네 능력이 백배 향상된다”라고 강조한다.

코타나는 자신의 창조자인 핼시 박사가 ‘마스터 치프의 몸을 차지해 그를 대신하라’고 명령했지만, 자기 판단으로 거부한다. 코타나는 “전 학습하도록 설계됐으니까요. 당신을 보고 배웠죠. 인류는 인간성 때문에 특별한 겁니다. 당신은 인간성을 지키려고 싸웠고, 올바른 명분이라고 믿어요”라고 명령 불복종 이유를 설명하며 인간 종족 편에 선다.

530년 뒤 슈퍼 AI의 미래상을 그렸지만, 사실 그렇게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인류에게 이로운 AGI(범용인공지능)’를 정관에 못박은 비영리재단 오픈AI 이사회의 ‘5일 천하’ 사태 때문이다. 1년 전 인류의 미래를 열었다는 챗GPT의 ‘아버지’ 샘 올트먼 오픈AI 대표가 이사회에서 해임된 지 5일 만에 복귀했다. 일리야 수츠케버 수석과학자가 주도한 쿠데타는 AGI 개발 속도를 둘러싼 견해차에서 비롯됐다는 추정만 난무한다. ‘인류가 AI를 통제하기 위해 챗GPT 5.0 개발 속도를 늦추자’ ‘속도를 높여서 잠재력을 극대화하자’는 세력의 충돌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1년 전 오픈AI가 챗GPT 3.5를 내놨을 때 일론 머스크는 “핵폭탄보다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AI를 어느 선까지 개발하고, 인류 사회의 가치관과 AI 윤리를 어떻게 일치시킬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더 큰 문제는 첨단 군비 경쟁에 버금가는 AI 기술을 개발하는 오픈AI 이사회의 논의 과정 어느 것 하나도 명확히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 개발자들에게 인류의 운명을 온전히 맡겨도 될까. 챗GPT가 자신을 창조한 개발자 ‘부모’들의 ‘엉망진창 막장 드라마’를 보면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판단할까. 세계가 더욱 적극적으로 머리를 맞대야 할 상황이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