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왜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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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 부산대 명예교수 전 한국유럽학회 회장

푸틴은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대상으로 ‘3일 특수 군사작전’을 펼쳤다. 친러시아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돈바스 지역을 러시아 영토화하고, 그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조프 민병대를 제거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는 크림반도를 군사력으로 재점령해 완전히 러시아 영토로 만들어서 러시아 국익을 증진하고, 러시아 안보를 더 공고히 하겠다는 이기적 발상이었다. 결국, 이 ‘3일 작전’은 1년 10개월을 넘긴 가운데 명백한 침략전쟁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외교·안보의 문제가 유럽연합과 나토 그리고 우크라이나 사이에 도사리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두 기구 가입을 반복적으로 요구했으나 워싱턴과 유럽연합은 전쟁에 휘말릴 가능성에 끌려 들어가는 것을 회피하려는 의도에서 지연술을 모호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유럽연합은 1990년대 초 이미 공동외교안보정책과 유럽안보방위정책을 수립해 대외정책을 수행하고 있었지만 정작 우크라이나의 반복적 나토 가입 요청을 회피했다. 1994년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와 미·러·영은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을 약속하는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체결했으나 이를 이행하지 못하고, 대립의 씨앗을 뿌렸다. 이 양해각서에 근거해 이 나라에 있었던 1800개 핵탄두를 러시아에 이관하는 대신 우크라이나 주권과 국경을 존중하겠다는 6개국 협정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전쟁을 억지하는 데 목적을 둔 나토 가입 협상이 무위로 돌아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 위험한 지연 상태는 푸틴에게는 침략 전쟁을 계획하도록 유도한 결과가 됐다.

그러면 왜 유럽연합과 나토는 이렇게 소극적인 대처를 했을까? 유럽의 외교·안보 정책의 모순 때문이었다. 유럽 중심기구의 하나인 집행기구가 광범위한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외교·안보 고위대표가 독자적 권한을 가진 채 대외 문제에 개입해 정책을 수립, 집행하는 권한이 매우 제약돼 있다. 회원국 외교장관 이사회의는 자국의 외교안보에 더 치중돼 있어서 공동외교안보 문제에 매우 조심스러운 자세로 임하는 경향이 강하다. 1998년 리스본 조약은 이러한 한계(또는 제도의 복잡성)를 개선하는 조항을 만들었지만, 역시 뛰어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유럽연합 정상회의 지위를 가진 유럽이사회는 유럽의 포괄적 이익과 미래를 조정하는 최고 기구이지만 합의를 찾는데 늘 진통을 겪어 왔다. 푸틴은 이 같은 무기력한 유럽에 즉각적으로 군사 작전을 전개하는 것이 러시아 국익과 안보를 돕는 것으로 판단했다.

유럽연합은 제도적으로, 기능적으로 제약이 많다. 필자는 최근 이러한 약점을 제거할 수 있는 기구 개편을 오래 전 브뤼셀에 건의한 바 있다. 연방외교정책이사회를 신설할 것을 제안했다. 이미 작동하고 있는 외교안보 최고대표 기구를 연방외교정책이사회에 흡수해서 유럽이사회와 동등한 지위를 설정하고, 독자적으로 대내외 외교·안보·방위 문제를 결정하는 확대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면 연방외교정책이사회가 공동외교안보와 유럽방위정책을 더 용이하게 추진할 것이다. 진작 이 기구가 작동했었더라면 전쟁을 억지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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