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겨울 거제? 싱가포르 열대 우림!

남태우 기자 leo@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3년 만에 관람객 150만 돌파 경남 거제식물원
정글돔 열대·아열대 이색 식물 맘껏 즐길 만
국화온실 화사한 꽃 다채로운 모습 접할 기회
인근 거제파노라마케이블카 풍광 체험은 덤

을씨년스러운 한겨울에도 열대 우림의 매력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있을까. 1년 내내 언제든 다양한 꽃과 식물을 만나는 그곳, 경남 거제시 거제식물원이다.

거제식물원은 싱가포르 가든스바이더베이의 플라워돔, 클라우드 포레스트를 닮은 정글돔으로 유명한 관광명소다. 3년 만에 관람객 150만 명을 돌파했으니 그 인기를 짐작할 만하다. 2020년 1월 개원하자마자 코로나19 탓에 1년 가까이 영업을 못 하고도 올린 성과다.

삼각형 유리 7500여 장으로 만들어진 거제식물원 정글돔. 삼각형 유리 7500여 장으로 만들어진 거제식물원 정글돔.

너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입장권(성인 5000원)을 구입했다. 야외연못인 생태수생정원에서 정글돔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것으로 여행을 시작한다. 삼각형 유리 7500여 장을 이어 붙였다는 반구형 구조물인 정글돔의 외관은 매우 인상적이다. 약간 촌스러운 출입구 장식물만 너그럽게 봐준다면. 외계인의 우주선처럼 보이기도 하고, 유리 달걀을 반으로 자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규모도 대단하다. 최대 높이 29.7m, 최대 길이 90m여서 돔형 유리온실 중에서는 국내 최대란다.

정글돔에 들어가면 일단 승강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간 뒤 일방통행 탐방로를 따라 걸어야 한다. 정글 산, 계곡 길, 빛의 동굴 길, 폭포 길, 하늘 길, 전망대, 숲길 등이 차례로 나타난다. 총 길이가 2km여서 꽤 긴 편이다.

거제식물원 정글돔은 동남아 열대 우림을 방문한 기분을 준다. 거제식물원 정글돔은 동남아 열대 우림을 방문한 기분을 준다.

정글돔 숲의 풍경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보기 힘들다. 그 중심은 유리 구조물을 배경으로 우렁차게 쏟아지는 폭포와 주변을 둘러싼 열대 우림이다. 이곳에서는 다양하고 거대한 열대·아열대 식물이 자란다. 추운 겨울에도 항상 20도 이상, 한여름에는 32도 이하를 유지한다.

열대 우림을 덮은 유리 구조물도 눈길을 끈다. 통유리 건물이나 콘크리트 건물에서 절대 느낄 수 없는 이색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규모는 훨씬 작고 약간 낯간지러운 시설물이 보이기도 하지만, 싱가포르 가든스바이더베이의 느낌이 되살아나는 기분을 감출 수 없다.

승강기에서 내리면 곧바로 폭포 전경이 보이는데, 먼저 사진부터 한 장 찍는 게 좋다. 승강기 앞과 나중에 나타나는 전망대 앞은 정글돔 최고의 ‘포토 존’이다. 어지간히 사진을 못 찍는 사람도 폭포와 유리 구조물에 초점을 잘 맞추면 ‘인생 샷’을 건질 수 있는 장소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거제식물원 정글돔의 유리 천장과 열대 우림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거제식물원 정글돔의 유리 천장과 열대 우림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정글돔은 실내 공간이지만 공기가 상당히 상쾌하다.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 필리핀 같은 동남아에서나 맡을 수 있는 이국적인 열대의 냄새가 여기저기 흘러 다닌다. 벤치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으면 이곳이 한국인지, 동남아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폭포를 지나 정글 하늘 길을 건너 전망대에서 사진을 찍는다. 다시 아래로 내려가면 다양한 열대‧아열대 식물 사이를 산책할 수 있다. ‘뉴질랜드 크리스마스 트리’라는 엑셀사, ‘코끼리 발’이라는 덕구리란처럼 전혀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식물이 지천이다. 이렇게 생긴 게 있었나, 감탄사가 절로 터지는 식물도 한둘이 아니다. 알록달록한 꽃이 화사하게 핀 식물도 적지 않게 보인다.

거제식물원 정글돔 내부 열대 우림 산책로는 이국적인 화초로 가득하다. 거제식물원 정글돔 내부 열대 우림 산책로는 이국적인 화초로 가득하다.

꽤 쌀쌀한 바깥과는 달리 덥기까지 한 정글돔을 1시간가량 둘러보니 몸에서 은근히 땀이 배어난다. 감기에 걸릴 각오를 하면서 정글돔에서 벗어나 이번에는 인근에 있는 농업개발원 쪽으로 향한다. 곤충체험관, 다육식물전시관, 야생화온실 등 다양한 온실과 봄, 가을에는 화사한 꽃으로 장식되는 농심테마파크, 겨울에 동백꽃이 예쁘게 피는 거제동백원이 있는 곳이다.

야생화온실을 둘러본 뒤 뒷문으로 빠져나가면 한겨울에도 예쁜 꽃을 볼 수 있는 공간이 나타난다. 초겨울 농업개발원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힐링허브랜드&국화육묘온실’이다. 온실에서 작업하던 한 직원이 “사계절 연중 각종 화초류와 허브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라고 친절하게 안내한다.

거제식물원 힐링허브랜드&국화육묘온실 화초 사이에 전시된 국화분재 작품. 거제식물원 힐링허브랜드&국화육묘온실 화초 사이에 전시된 국화분재 작품.

직원의 말처럼 온실 내부는 다양한 꽃으로 가득 찼다. 꽃만 있는 게 아니라 ‘예술 작품’까지 갖췄다. 거제시의 국화분재 예술가들이 액자에 담아 만든 특이한 형태의 각종 국화분재다. 절벽에 매달린 소나무처럼 장식된 국화는 물론 산 능선을 따라 핀 야생화 같은 국화까지 여러 점이다.

여러 꽃 축제와 견주어도 이렇게 창의적이고 독특한 꽃 장식품을 만나는 것은 처음이다. 국화분재 주변에는 각종 국화에다 맨드라미, 가자니아 등 다양한 꽃이 서로 조화롭게 자라는 중이다. 온실 바깥에는 싸늘한 찬바람을 입에 가득 머금은 겨울이 서성이고 있는데 이곳은 따스하고 아름다운 봄, 가을 풍경이 가득하다.

거제식물원 힐링허브랜드&국화육묘온실에서 다양한 꽃이 자라고 있다. 거제식물원 힐링허브랜드&국화육묘온실에서 다양한 꽃이 자라고 있다.

3시간 가까이 열대‧아열대 식물에 이어 화사한 꽃까지 구경한 뒤 거제식물원 입구 쪽 작은 식물원 같은 카페에서 차 한 잔을 마시며 여유를 즐겼다. 문득 산꼭대기에서 겨울바다를 내려다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마시던 차를 들고 나와 급히 차를 몰고 거제파노라마케이블카로 향했다. 차로 20분 거리다.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평일 낮인데도 케이블카 손님은 적지 않았다. 바닥이 막힌 파란색 케이블카를 타고 상부 정류장으로 오른다. 상부 전망대에 서면 흑진주몽돌해수욕장은 물론 외도 등 푸른 남해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짙은 갈색으로 물든 단풍 사이를 지나가는 거제파노라마케이블카. 짙은 갈색으로 물든 단풍 사이를 지나가는 거제파노라마케이블카.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방해꾼이 시원한 풍경을 즐기려던 계획을 방해했다. 우리나라 전역을 뒤덮은 미세먼지였다. 남해의 푸른 파도는 마치 안개에 덮인 것처럼 희미하게 보일 뿐. 외도는 아예 흔적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남해를 배경으로 산을 오르는 케이블카를 사진 한 장에 담으려 했지만, 보기 좋게 실패다. 여행은 언제나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닌 법이다. 다음을 기약하며 발길을 돌려야 했다.


남태우 기자 leo@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