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전통 금융시장서도 블록체인 수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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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홍열 비댁스 대표·변호사

금융 선진국의 정부·금융기관
앞다퉈 블록체인 기술 사업화

이들 국가 상품화 나섰다는 건
디지털 자산이 대세라는 의미

금융 허브·선진화 목표로 한다면
토큰 증권 분야에 속도 올려야

올해 초 정부는 블록체인 기술을 금융시장에 본격 수용하기 위한 첫 작품으로 토큰 증권을 발표했다. 자본시장법에서 규율되는 증권에 포섭되는 디지털 자산을 토큰 증권으로 명명하고, 규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한국거래소(KRX), 예탁결제원 등 기존의 인프라에 금융기관과 블록체인 관련 기업까지 포함하는 큰 그림이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 법령을 정비해 토큰 증권이 본격적으로 발행·유통될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기국회 회기가 마무리되어 가는 지금 상황에서 그러한 청사진은 빛이 바래고 있다.

반면 세계 시장은 역동적으로 변모하고 있다. 싱가포르 경제청은 JP모건, BNY, UBS를 비롯해 블록체인 기업들과 손을 잡고 다양한 자산을 토큰화할 수 있는 블록체인 플랫폼을 론칭하는 프로젝트 가디언을 발표했다. 싱가포르 정부가 전통 금융시장의 강자들과 함께 기존의 각종 자산을 토큰화하는 블록체인 기술 사업화에 뛰어든 것이다. 일본에서도 발 빠른 움직임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20일 오사카 디지털 거래소(ODX)가 다음 달 25일 새로운 디지털 증권 거래 플랫폼인 스타트(Start)를 론칭한다고 밝혔다. 디지털 증권은 한국의 토큰 증권에 해당한다. 2021년에 설립된 ODX는 SBI 홀딩스, 스미토모 미쓰이 파이낸셜 그룹 등 일본 전통 금융시장의 거물급 업체들로 구성돼 있다. ODX의 디지털 증권 거래 시스템인 스타트는 지난 16일 일본 금융감독청으로부터 규제 승인도 받았다. 스타트에서는 부동산을 비롯한 다양한 자산이 토큰화돼 거래될 예정이다. 미국의 경우, JP모건은 자체 프라이빗 블록체인을 만들어 매일 10억 달러(약 1조 3166억 원)를 처리하고 있다. 전 세계 온라인 지불 시스템을 운영하는 미국의 페이팔은 4억 명 이상의 활성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뉴욕 금융감독청(NYDFS) 규제를 받는 팍소스(Paxos)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스테이블코인 시장에 진출했다. 세계적인 자산 운용사 블랙록과 피델리티는 현물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 승인 신청도 해 놓고 있다. 영국에서는 업계 강자들이 규제 프레임 내에서 가상자산 사업에 속속 진출하고 있다.


금융 선진국의 정부와 금융기관들이 앞다퉈 블록체인 기술의 금융 사업화에 나서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우선, 블록체인 기술이 전통적인 금융시장에 녹아들 수 있음이 확인되었다. 그동안 가상자산 내지 암호화폐를 통해 블록체인 기술이 기술 기업의 자금 확보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었고, 거래소들을 통해 투자 대상으로서 거래될 수 있었다. 이 점을 금융기관들이 간과하지 않고 활용하게 된 것이다. 다음으로, 블록체인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은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전통 금융시장에서 블록체인 기술이 활용돼 다양한 자산을 토큰화하고 이것이 유통될 수 있다는 점은 블록체인이 이제 본격적으로 실사용 사례를 찾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여러 산업 분야 가운데 대표적으로 보수적인 분야가 바로 금융권이다. 그 금융권에서 블록체인을 수용해 상품화에 나섰다는 것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디지털 자산이 대세가 되어 간다는 것이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양성화의 길에 들어섰다고 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금융 선진화를 목표로 한다면 블록체인을 활용한 상품이나 서비스 개발, 특히 토큰 증권 분야에 속도를 올려야 한다. 금융시장은 다른 산업 분야와 비교해 선점 효과가 크다. 시장에 상품을 먼저 출시한 쪽에서 시장을 선점해 나갈 가능성이 훨씬 높다. 시장의 보수적인 성격 탓이다. 그래서 아시아의 금융 허브를 목표로 하는 부산으로서는 토큰 증권 분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부산시 입장에서 가상자산보다는 토큰 증권에 역량을 강화해 블록체인이 제도권 내에서 활용되면서, 동시에 금융 허브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정부 기관과 메이저 기관들이 가상자산을 수용하는 데에서 나아가 토큰 증권이라는 형태로 기존의 자본시장에 블록체인을 흡수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본래 비전이 올바른 관점에서 평가받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블록체인에 일찍 눈을 뜬 서툰 엔지니어들이 가상자산이라는 거대한 자본을 접하게 되면서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신기술 도입기에 나타나는 부정적 행태들이 바로 잡히면서 위협이 아닌 더 큰 발전과 혁신의 촉매제가 됐다. 요즈음 관찰되는 블록체인 기술의 금융 사업화는 업계에 더 큰 발전의 계기가 돼, 블록체인 생태계를 한층 견고하고 강인하게 만들 것이라 예상한다. 블록체인이라는 기술 혁신이 경제 민주화에 기여해 모든 시장 참가자에게 경제적 혜택이 돌아가는 금융 혁신의 날이 성큼 다가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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