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정치인' 한동훈의 세 가지 리스크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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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호 서울정치부 부장

메시지 아닌 메신저 공격은 낡은 정치 수법
정치 파트너 인정해야 지도자 자격 갖춰
자신도 못느끼는 엘리트주의 극복해야
정치인에 적용되는 리스크 이겨낼지 주목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내년 총선 출마가 기정사실화됐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정치적 팬덤이 형성된 여권 인사는 한 장관뿐일 것이다. 그가 ‘정치인’으로 옷을 갈아입을 순간이 다가왔다. 정치인에게 적용되는 여러 변수가 한 장관에게 어떤 리스크로 다가올지는 불투명하다. 이준석 전 대표의 말마따나 그는 ‘긁지 않은 복권’이다.

한 장관이 보여주는 막강한 대야 전투력은 상당 부분 그의 논리적 사고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최근들어 메시지가 아닌 ‘메신저’를 공격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2일 이정섭 전 수원지검 2차장 처남의 마약 의혹과 관련해 “누구 마약은 잡고 누구 마약은 다 봐주는 것이었냐”며 한 장관을 비판했다. 그러자 한 장관은 서 최고위원을 겨냥해 “보좌진을 친인척으로 채운 분, 보좌진 월급에서 후원금 떼간 분”이라고 맞받았다.

이재명 대표에게는 “세금으로 샴푸 사고, 가족에게 법카(법인카드) 줘서 소고기 초밥을 먹었다”고 공격했다. 송영길 전 대표가 ‘검사 갑질’이라고 한마디하자 “겉으로 깨끗한 척하면서 NHK 다녔다”고 과거 ‘새천년NHK 사건’을 끄집어냈다.


팩트는 모두 맞다. 과거 일들을 컴퓨터처럼 머리 속에 저장해놓았다 필요할 때 꺼내는 대단한 순발력이다. 하지만 공인이라면 메신저를 공격하기 전에 메시지에 먼저 대답하는 것이 순서다. 서영교 최고위원의 문제 제기에는 “누구라도 죄가 있다면 당연히 법에 따라 처벌받을 것”이라는 답이 먼저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고 메신저의 과거 잘못부터 거론하니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받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도 할 말을 다한다. 그래서 메신저가 밉더라도, 그가 비판에 나설 자격이 없더라도 설명과 설득을 해야 하는 것이 정치인의 숙명이다. 민주당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재명·송영길·서영교의 흑역사 노출에 속시원할 수 있다. 하지만 지지하는 사람을 한 명이라도 늘리려면 자신에게 제기된 문제에 먼저 대답하는 겸손함을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싸움꾼과 다를 바 없다. 한 장관의 인기는 기성 정치인과 차별화되는 모습 때문이다. 메시지가 아닌 메신저를 공격하는 것은 낡은 정치 수법이다.

정치에서는 경쟁 상대를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 한 장관은 민주당의 탄핵 추진에 “만약 법무부가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했다는 이유로 민주당에 대해 ‘위헌정당 심판’을 청구하면 어떨 것 같느냐”고 했다. ‘만약’이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위헌정당 심판은 ‘정당 해산’으로 귀결될 수 있는 중대한 헌법적 절차이다. 수 십 년 역사를 지난 제1야당을 없애버릴 수도 있다는 발언은 분명 선을 넘은 것이다. 상대의 존폐를 거론하면서 대화할 수 있을까.

‘암컷’ 발언 논란을 일으킨 최강욱 전 의원이 “이게 민주주의야. 멍청이야”라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한 장관은 “이게 민주당이야. 멍청이야”라고 되받았다. 위트가 넘친다는 환호가 쏟아졌다. 하지만 최강욱이라는 개인을 비판하면서 대화 파트너가 될지도 모를 정당을 굳이 모멸할 이유가 있었을까. 검사에게 범죄자는 반드시 사법처리를 통해 척결해야 할 대상이다. 정치인에게 상대 당은 대화를 나누고, 국익을 함께 고민해야 할 대상이다.

한 장관은 뼈 속에 감추진 뿌리 깊은 ‘엘리트주의’도 경계해야 한다. 서울 강남에 살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고 하는 말이 아니다. 한 장관은 이미 그 정도 수준의 엘리트주의는 극복했다. “나 잘 났다”고 티 내는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문제는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한 엘리트주의다. 그는 “여의도에서 300명(국회의원)만 공유하는 화법이나 문법이 있다면 그건 ‘여의도 문법’이라기보다는 ‘여의도 사투리’ 아닌가. 저는 나머지 5000만 명(국민)이 쓰는 문법을 쓰겠다”고 했다. 여기서 한 장관은 문법에 어긋나는 언어를 사투리로 정의했다. 지방을 서울보다 한 단계 낮춰보는 내면의 인식을 드러낸 표현이다.

그의 완벽주의도 엘리트주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한 장관은 어떤 현안에서든 지지 않으려 한다. 강남의 명문고에서 전교 1등을 다툰 수재답다. 그런데 국민들은 때로는 2등도 하고, 실수도 하는 정치인에게 더 많은 정을 준다. 윤석열 대통령의 ‘사법고시 9수’가 인간적으로 느껴졌다는 사람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살아오면서 한 번도 실패하지 않은 한 장관이 생업에 찌든 서민들과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정치인으로서는 최대의 리스크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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