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책은 아이가 고른 책… 스스로 흥미 찾도록

김한수 기자 hangang@busan.com ,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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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독서수업 통해 본 교육법

강서구 명일초등 민소희 교사
학생들과 함께 책 읽으며 역할극
감정 공유·사고 확장 효과 극대화
저학년, 부모가 읽어주며 소통을

부산 강서구 명일초등학교 민소희 교사와 3학년 학생들이 지난 14일 책 <슈퍼 토끼>를 읽고 역할극을 진행해 보는 등 독서 수업을 하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부산 강서구 명일초등학교 민소희 교사와 3학년 학생들이 지난 14일 책 <슈퍼 토끼>를 읽고 역할극을 진행해 보는 등 독서 수업을 하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우리 아이는 무슨 책을 읽어야 할까. 한 달에 최소 몇 권의 책을 읽어야 할까. 책보다 유튜브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어떻게 책을 권할까?’

독서 교육은 학부모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독서가 교육에 좋다는 건 알지만 어디서부터 할지, 어떻게 할지는 막막할 따름이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성향일지라도 어떤 책을 권해야 할지 고민은 꼬리를 문다. 독서 교육에 왕도는 없다. 부산의 한 초등학교 교실 수업을 통해 ‘책 읽는 아이 만들기’의 힌트를 얻어보자.

■쉬운 이야기로 시작하는 책 읽기

“토끼는 왜 거북이와의 경주에서 졌을까요? 경주에 진 토끼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지난 14일 부산 강서구 명일초 3학년 4반 교실. 민소희 교사는 토끼와 거북이 경주 이야기로 수업을 시작했다. 학생들은 아는 이야기가 나오자 저마다 손을 들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토끼가 허탈했을 것 같습니다” “토끼가 방심했던 것 같습니다” 라는 등등의 답을 쏟아낸다.

수업은 책 〈슈퍼 토끼〉(작가 유설화)를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누는 독서 수업이다. 〈슈퍼 토끼〉는 거북이와의 시합에서 진 뒤 토끼에게 벌어진 뒷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책의 주인공 토끼 ‘재빨라’는 거북이와의 경주에서 진 뒤 좌절해 이마에 ‘뛰지 말자’라는 문구를 쓰고 살아간다.

“재빨라는 왜 이마에 뛰지 말자는 문구를 새겼을까요?” 민 교사가 질문을 던지자 여러 학생들이 손을 들고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토끼는 속상하고 억울해 뛰기가 싫을 것 같습니다.” “토끼는 억울하고 왜 방심했을까 자책했을 것 같습니다.”

자칫 식상하거나 뻔할 수 있는 이야기. 민 교사는 학생들 앞에서 토끼와 거북이 목소리를 바꿔가며 책을 함께 읽는다. 학생들은 순식간에 수업에 몰입한다. 단순히 문장을 읽는 것을 넘어 당시 토끼 재빨라의 기분, 재빨라 친구라면 어떻게 재빨라를 위로할지 같은 이야기로 수업이 이어진다. 책 내용을 바탕으로 감상을 공유하거나 생각을 확장하다 보면 독서의 효과는 극대화된다.

수업의 백미는 재빨라 역할극이다. 허예서 양이 재빨라로 변신해 학생들과 대화를 나눈다. 학생들은 책에는 없었던 재빨라의 친구가 돼 재빨라를 위로하고 격려한다. 학생들은 한 명씩 나와 재빨라를 위로한 뒤 재빨라와 포옹했다.

“재빨라야. 경기에서 진 뒤 아무도 너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 속상했지? 내가 너의 이야기를 들어 줄게.” “재빨라야. 실패해도 괜찮아. 넌 달리기 그 자체를 좋아하잖아.”

부산 강서구 명일초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들이 함께 책을 읽고 있다. 이재찬 기자 부산 강서구 명일초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들이 함께 책을 읽고 있다. 이재찬 기자

■집에서 함께하는 책 읽기

민 교사는 부산시교육청 초등 독서교육 전문지원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교육청 독서토의연구회 회원으로 독서교육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의 자료를 만든다. 독서 교육을 고민하는 교사, 학부모와 상담을 진행하기도 한다. 학부모, 교사들의 고민은 비슷하다.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같은 고민이다.

초등학교 독서 시간처럼 책으로 아이와 대화하며 단순한 책 읽기 이상의 효과를 거두는 활동은 얼마든지 가정에서도 가능하다. 민 교사는 독서 교육의 첫걸음으로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민 교사는 “독서 분위기를 만들자는 취지로 TV를 없애고 거실을 서재처럼 꾸미기도 하는데 그것보다는 가족이 함께 책 읽는 시간을 가지거나 도서관을 자주 가는 일상 습관이 중요해 보인다”며 “저학년의 경우 한글을 배워 스스로 책을 읽게 되면 책을 안 읽어주는 부모가 많은데 저학년은 음성 언어를 더 잘 이해하는 만큼 책을 읽어주며 책을 통해 가족과 소통한다는 감정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환경이 조성됐다면 아이와 독서 습관 형성을 위한 약속을 반드시 해야 한다. 부모 마음은 매일 1권 이상 책을 읽으면 좋겠지만 보다 현실적이고 아이도 동의할 수 있는 목표가 필요하다. 아이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지 않으면 목표는 보통 목표 자체에 그치기 때문이다. 민 교사는 “아이에게 ‘하루 20분 책 읽는 건 어떨까’ 제안을 하면 ‘하루에 10분만 읽으면 안 되냐’는 답이 돌아올 수도 있다”며 “아이 입으로 10분을 말하고 실천한다면 훌륭한 독서 습관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러 권의 책을 읽는 것과 한 권을 반복해 읽는 것 중 어떤 방식이 더 좋은지에 대한 고민도 같은 맥락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의 성향이다. 민 교사는 “다독을 위해 책을 대충 훑는 식으로 내용을 숙지하지 않는 방식으로 책 읽기만 하지 않으면 두 방식 모두 아이 성향을 고려해 권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학년과 아이의 수준마다 편차가 있겠지만 좋은 책은 어떤 책일까. 민 교사는 여러 기관에서 추천 도서를 내놓지만 가장 좋은 책은 ‘아이가 고른 책’이라고 단언한다.

쉬운 책부터, 아이가 좋아하는 책부터 시작한다면 어느덧 독서 습관은 자연스레 형성된다. 민 교사는 “아이에게 책을 억지로 읽히는 건 불가능하기에 추천 도서 이전에 아이가 고른 책이 중요하다”며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스스로 책을 고르도록 해 주다 보면 흥미를 가지는 분야가 생길 것이고 그 흥미가 독서 습관 형성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한수 기자 hangang@busan.com ,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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