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팍스(PACS)제도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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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은 어떤 ‘비정상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핏줄이나 혼인으로 엮이지 않았는데도 가족을 이뤄 살아가는 사람들. 제각각의 상처와 외로움을 지닌 이들끼리 따뜻하게 감싸 주면서 용기와 위로를 나누는 과정이 감동적이다. 진짜 가족이 아니면서도 애정과 결속력으로 서로 힘이 되어 주는 과정을 그려내면서 영화는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

한국 문화는 결혼식을 올리고 자녀를 가져야 ‘정상 가족’으로 여긴다. 하지만 한국의 가족제도는 형해화된 지 오래다. 각종 지표는 무참하기 그지없다.

27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청년 세대(만 19∼34세)의 81.5%는 ‘미혼’ 상태다. 2000년 54.5%에서 껑충 뛰었다. 1인 가구가 2000년 15.5%에서 2022년 34.5%로 배 이상 늘었다. 결혼보다 출산이 어렵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1955년 6.33명을 정점으로 속절없이 곤두박질쳐서 지난해 0.78명으로 추락했고, 올 상반기 0.70명으로 최저 기록을 경신했다.

인구 소멸이 대한민국 위기의 근원이 됐다. 그 핵심에 가족 문제가 있다. 다양한 시각으로 가족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는 인식 확산도 그 때문이다.

저출산고령화위원회가 27일 발표한 ‘저출산 인식조사’에서 ‘사실혼을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결혼 제도를 인정해야 한다’는 응답이 무려 81.0%를 차지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프랑스 식 팍스(PACS)제도 도입 시 저출산 문제 극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76.8%가 동의했다.

팍스는 시민연대계약(Pacte Civil de Solidarite)의 약자로 동거인도 등록만 하면 부동산, 세금, 상속, 건강보험 등에서 인정과 보호를 받는 제도다. 예컨대 미혼 커플이 출산해도 결혼한 부부와 법적으로 아무런 차별없는 지원을 받는다. 프랑스에서 1999년 도입되어 출산율 제고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팍스제도에 대해 60대 이상은 80.6%, 50대 81.6%로 적극 찬성했다. 혼기를 넘긴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애처로움이 반영된 것일까. 반면 결혼 적령기에 들어선 30대는 68.1%, 40대는 70.0%로 평균을 하회했다. 청년 세대의 고민이 읽히는 대목이다.

팍스는 ‘정상 가족’이란 고정관념 밖에서 해결책을 찾다가 나왔다. 우리도 가족의 정의를 다양화하고 유연한 선택지를 만들어 나갈 때 우리 실정에 맞는 인구절벽 해법을 찾을 것이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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