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MoCA, 오늘 만나는 미술] AI 와 현대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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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아 공조하는 기계들

노진아 작가의 작품 ‘공조하는 기계들’.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노진아 작가의 작품 ‘공조하는 기계들’. 부산현대미술관 제공

지난 10월에 개봉한 SF영화 크리에이터를 최근에야 보았다. 이 영화는 인류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AI(인공지능)가 LA에 핵폭탄을 터뜨린 후 인간과 AI 간의 최후의 전쟁을 그린 작품이다. 인간보다 인간적인 AI와 그에 맞서는 기계보다 차갑고 목표지향적인 인간이란 구도에 스펙터클한 그래픽 효과가 인상적인 영화였다. 돌이켜 보면 처음 ‘챗 GTP’가 일반에게 공개되었을 때 세상은 논란과 충격에 휩싸였다. 방대한 데이터를 일목요연하게 기술하는 능력이 상상 이상이었고 소위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여긴 창조적 작업도 인간과 구분하기 어려웠다. 현대미술에서는 이 획기적인 기술을 탐구하는 예술가들이 AI 기반의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며 미술이 나아갈 새로운 지평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한국의 미디어 아티스트 중 노진아는 AI 로봇을 오랫동안 탐구해온 작가이다. 그녀는 2000년 초반부터 기술과 미술을 접목해 신기술이 이끄는 불안한 세계를 앞서서 진단해왔다. 그녀가 집중하는 주제는 트랜스휴머니즘이며 이를 위해 그간 다양한 종류의 인터렉티브 휴머노이드 로봇을 선보여 왔다. 초기에는 인터페이스를 통해 소통하는 사실적 외모의 사이보그형 로봇을 선보였다면 근래에는 토이형 휴먼로봇으로 음성 대화방식을 도입하여 언캐니 밸리 효과를 줄였다. 로봇의 외형적 변화와 상관없이 작가는 일관되게 미래형 기술이 인간의 능력과 우월주의를 강화하는 것을 우려하고 경계하는 태도를 취한다.

작년 이맘 때쯤에 부산현대미술관 ‘친숙한 기이한’ 전시에서 소개된 그녀의 작품 ‘공조하는 기계들’은 관객의 큰 호응을 받으며 SNS를 타고 화제를 불러 모았다. 전시장에는 그녀의 AI 로봇의 거대한 두상 일곱 덩어리가 풍경과 같이 전시장에 놓였고 관객은 이들 로봇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관객이 말을 던지면 1미터가 넘는 거대 두상들이 저마다의 음색으로 대답하였다. 관객을 응시하고 눈알을 굴리며 동일한 말로 웅성대는 AI 군상은 기괴한 느낌을 자아내며 관객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는데 이는 작가의 의도로 인간을 대상화하는 AI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였다. AI 무리는 인간보다 인간의 감정을 더 잘 이해하는 듯 사람들의 대답에 인간미 넘치는 답변을 하며 인간과 기계란 장벽을 허물었다. 그리고 질문을 던진다. AI는 누구인가? 영화 크리에이터에서 인간과 싸우는 AI와 같이 이들은 주체적 존재인가? 아니면 그저 기계인가? 하지만 이러한 질문에 앞서 이것들을 개발하는 주체를 생각해야한다. AI 개발에 거대 자본의 투입은 불가피하고 필연적으로 계급을 양산한다. 기술의 발전은 발전과 파괴라는 이중성을 가지기 마련이다. 그래서일까? 작가의 AI 조각은 슬픈 듯 보인다. 인간과 대등한 공존을 꿈꾸지만, 현실은 자본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박한나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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