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기준금리 동결, 내년 성장률 전망 낮추고 물가 전망은 높였다
30일 금통위, 10개월 연속 금리동결
경기부진·부동산PF 부실, 가계부채·물가 사이 딜레마
이창용 총재 "긴축 기조, 6개월보다 길어질 것"
한국은행이 30일 기준금리를 다시 3.50%로 묶었다. 또 내년 성장률 전망 역시 2.2%에서 2.1%로 낮춰 잡았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낮출 만큼 경기 회복세가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가계부채 증가세 등을 명분으로 무리하게 금리를 높여 소비와 투자를 더 위축시키고 가계·기업 부채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부실 위험을 키울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는 이날 오전 9시부터 열린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현재 기준금리(연 3.50%)를 조정 없이 동결했다. 금통위는 회의 의결문에서 동결 배경에 대해 "물가상승률이 당초 예상보다 높아졌지만 기조적 둔화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가계부채 증가 추이와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도 큰 만큼 현재의 긴축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물가와 관련해서는 "수요 압력 약화, 국제 유가와 농산물 가격 하락 영향 등으로 기조적 둔화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예상보다 높아진 비용 압력에 지난 8월 전망 경로를 상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경기에 대해서는 "앞으로 수출 회복세 지속 등으로 개선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며 "올해 성장률은 8월 전망치에 부합하는 1.4%로 예상되고 내년 2.1%로 높아지겠지만, 국내외 통화긴축 기조 장기화와 더딘 소비 회복세 영향으로 지난 전망치(2.2%)를 소폭 하회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앞서 금통위는 2021년 8월 기준금리를 15개월 만에 0.25%p 올리면서 이른바 '통화정책 정상화'에 나섰다. 이후 기준금리는 같은 해 11월, 지난해 1·4·5·7·8·10·11월과 올해 1월까지 0.25%p씩 여덟 차례, 0.50%p 두 차례 등 모두 3.00%p 높아졌다.
하지만 금리 인상 기조는 사실상 지난 2월 동결로 깨졌고, 3.5% 기준금리가 이날까지 약 10개월째 유지되고 있다. 한은이 7연속 동결을 결정한 것은 성장 부진 속에 가계부채 등 금융 불균형만 계속 커지는 '딜레마'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향후 긴축 기조와 관련해 "현실적으로 6개월보다 더 길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 총재는 이날 금통위 결정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 수준(2%)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충분히 장기간 긴축 기조를 가져가겠다는 뜻"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한은은 이날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3.5%에서 3.6%로, 내년 전망치를 2.4%에서 2.6%로 각각 상향 조정했다. 다만, 이 총재는 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 부양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지금 상황에서는 섣불리 경기를 부양하다 보면 부동산 가격만 올릴 수 있고 중장기 문제가 더 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성장률 문제는 구조조정을 통해서 해결하려고 해야지 재정이나 통화정책으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 총재는 또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고 생각하지 않고 아직 안심할 단계도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높은 금리가 유지되면서 그로 인한 부담이 증가할 것"이라며 "건설사 등이 고금리 지속으로 문제가 생기면 하나씩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가계부채 억제 방안에 대해 "가계부채 절대액이 늘어나지 않게 하는 정책을 하면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이번 정부가 끝날 때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얼마나 줄었는지 판단해주면 좋겠다"며 "속도 조절하며 천천히 줄이는 게 좋고, GDP 대비 비율을 지켜보자고 말씀드린다"고 했다.
이밖에 홍콩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의 대규모 손실에 대해선 "단기 자금시장이나 채권 시장의 영향은 적을 것"이라며 "불완전 판매가 사회적 문제가 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박지훈 기자 lionki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