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면역 수직정원' 만든 사람은 전직 국회의원 보좌관
오동국 코르크월드 대표
굴참나무서 채취한 코르크 활용
블록처럼 조립하는 키트 만들어
부산이 청년 기업인의 토대 되길
“도시철도 서면역의 수직정원, 잘 즐기고 계신가요?”
대한민국 도시철도 역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서면역의 수직정원은 패기 넘치는 한 부산 엔지니어의 작품이다. 강서구에 본사를 둔 ‘코르크월드’ 오동국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오 대표의 활동 무대는 조경업계가 아니라 정치권이었다. 대학을 마치고 국회의원실에서 인턴을 하며 여의도 생활을 시작한 것.
오 대표는 “대학 전공은 전자공학인데 그땐 ‘뭔가 행정적인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면서 “그 길로 국회의 문을 두드렸고 그게 사회 생활의 첫 걸음이 될 줄은 몰랐다”고 웃었다.
인턴에서 비서관까지 5년 넘는 국회 생활을 마치고 다시 사회로 나온 오 대표를 이끈 건 역시나 엔지니어의 피였다. 2014년 사업하던 지인 소개로 처음 접한 수직정원이 한순간에 그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국회로 향할 때처럼 무작정 조경업계에 뛰어든 오 대표의 승부수는 탄화코르크다. 말 그대로 굴참나무에서 채취한 코르크를 고온에 탄화시켜서 만든 소재다. 그는 “보통 코르크 하면 와인 마개로만 생각하시는데 이 코르크가 습도 조절이 쉽고 탄화시키면 숯의 살균 기능까지 겸해 수직정원을 위한 자재로는 최상”이라고 설명했다.
수령이 200년 안팎인 굴참나무는 코르크로 된 껍질을 정기적으로 벗겨 주지 않으면 생육이 어렵기 때문에 소재 채취 자체도 친환경이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기대감에 부풀어 탄화코르크 제조 공정을 직접 보자고 포르투갈 제조공장까지 수시로 찾아간 오 대표다. 나무도 살리고, 소재도 만드는 공정을 보고 ‘이거라면 분명 비전이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했다. 그는 “기후변화가 세계적인 화두가 됐고 이 아이템이라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도 끼칠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왔다”고 말했다.
오 대표는 탄화코르크를 수입한 뒤 그 위에 특허를 받은 관수시스템을 적용시켜 나무와 생육장치가 일체화된 키트를 만들어 냈다. 나무를 일일이 따로 심을 필요 없이 키트만 원하는 장소에 레고 블록처럼 조립하면 편리하게 수직정원이 완성되는 방식이다.
물론, 생각처럼 사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건 아니다. 같은 수직정원이라고는 해도 어느 위치에 설치하느냐에 따라 식물의 생존율이 천차만별이었다. 오 대표는 “계절별 최적의 생육환경을 찾는 게 힘들어서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땐 고객사의 요청이 없어도 한달에 1~2회씩 불쑥불쑥 전국의 현장을 돌며 모니터링했다”고 말했다.
설치가 쉽고, 식물이 시들어도 시든 부분의 키트만 교체하면 되는 오 대표의 수직정원이 그렇게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금정구청을 비롯해 경북 울주군청, 충북 교육청 등 관공서의 수직정원 조성 요청이 이어졌다. 가야대로와 금곡대로 율리역 옹벽의 수직정원 역시 오 대표의 작품이다.
하지만 오 대표가 가장 애착을 갖는 건 도시철도 서면역 수직정원이다. 규모도 규모지만 지하 3층까지 내려가는 극한 환경에 조성한 수직정원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하 3층 작업은 처음인데다 햇볕도 통풍도 안 되는 공간이라 그저 막막했다”면서도 “갑갑한 도시철도 역 안에서 싱그러운 식물을 만나는 공간이 화제가 되면서 부산시장상의 영예도 안았다”고 자부심을 내비쳤다.
영하 70도까지 얼지 않아 공사장에서도 단열재로 곧잘 사용되는 게 코르크다. 탄화코르크 키트는 체감온도 15도 안팎의 부산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다. 오 대표는 그의 승부수인 탄화코르크처럼 부산의 청년 기업가들도 푸르른 초심을 잃지 않길 바란다.
오 대표는 “국회를 떠나 더 늦기 전에 내 재주를 믿고 사업에 도전해야겠다는 결심이 오늘의 저를 만든 것처럼 내 고향 부산이 나 같은 청년 기업인이 잘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되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