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균 칼럼] 욕본, 욕하는, 욕먹는 사람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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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봤다’란 경상도 사투리 칭찬 말투
부산엑스포 유치 운동에 하고 싶어
상처주는 욕설·막말 정치권에 난무
여야 국회의원 욕하다 욕먹기 일쑤
품위 갖고 국민들 위한 도리 다해야
정쟁·언쟁 대신 협치 노력하길 기대

“욕봤습니다.” ‘욕’(辱)이란 낱말이 들어 있는 이 말은 남을 헐뜯는 욕설이 결코 아니다. ‘수고했다’는 좋은 뜻을 가진 경상도 사투리 말투다. 힘든 일을 하느라 공을 들이고 애를 쓴 사람을 칭찬하거나 격려할 경우 많이 사용하는 경상도 말이다. 몹시 고생스러운 일을 겪은 이에게 위로를 건넬 때도 쓰는 표현이다. 그동안 2030부산월드엑스포(세계박람회) 유치 운동에 힘쓴 민관합동유치위원회 구성원의 등을 두드리고, 유치 열기를 뜨겁게 달군 부산 시민 어깨를 토닥이며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엑스포 유치위에 참여한 정관계와 재계 인사들은 지난 500여 일간 지구를 495바퀴나 돌 수 있는 1989만 1579km 거리를 누비면서 유치전에 총력을 기울였다. 비록 부산 유치엔 실패했지만, 민관이 한마음으로 똘똘 뭉친 ‘K원팀’의 유치 활동 과정에서 이뤄낸 성과는 엄청나다. 잘사는 데다 첨단 기술력을 보유한 우리나라 국격과 위상을 지구촌 만방에 드높였다. 특히 180여 개국에서 해양·관광 도시 부산의 매력과 특장점을 널리 알려 도시 브랜드 인지도를 크게 높인 의미는 각별하다.


엑스포 유치전을 통해 해외에 새로 구축하고 넓힌 외교·경제 지평. 전 세계인에게 또렷하게 각인한 부산과 한국의 멋진 이미지. 이를 자산으로 잘 활용하고 부산 유치가 실패한 원인을 철저히 분석해 교훈으로 삼는다면 국운 상승과 부산 발전에 새로운 동력이 될 게 분명하다. 그래서 이번에 수고한 이들을 위해 큰 소리로 해 주는 말. “욕봤소, 욕봤심더, 욕봤심미데이, 욕봤어예!”

‘욕’이 부산을 비롯한 영남 지역에서 긍정적이고 정겹게도 쓰이는 것과 달리 일반적인 정체성은 부정적인 데 있다. 일상에서 통용되는 욕의 진정한 의미는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모욕적인 말’ 또는 ‘남을 저주하는 말’이어서다. 이게 국어사전이 풀이해 놓은 욕의 가장 보편적인 뜻이다. 욕은 남에게 상처를 주기 십상인 천박한 언어다. 함부로 입에 담거나 쉽게 내뱉으면 안 되는 금기어인 셈이다.

최고 지도층으로 꼽혀 온갖 예우 속에 특권을 누리는 국회의원이 저급한 욕의 쓰임새가 많은 계층인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정치인이 남발하는 막말 속에 욕이 담겨 볼썽사나운 건 흔한 일이 된 지 오래다. 불과 몇 년만 살펴봐도 욕하는 바람에 생긴 설화는 열거하기 힘들 만큼 차고 넘친다. 요즘은 정치권에서 욕설을 방불케 하는 거칠고 속된 발언이 마구 오가는 정도가 심해졌다. 극심한 정쟁을 일삼는 여야 거대 양당 간에, 심지어 같은 정당 인사끼리도 잔인한 표현을 살천스레 주고받으며 마찰을 일으킨다.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최근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쏘아댄 언행이 대표적이다. 그는 한 장관을 “어린놈” “건방진 놈” “미친놈”이라고 비하했다. 이어 최강욱 전 민주당 의원이 대통령 부인을 겨냥해 “암컷들이 설친다”고 한 언사는 여야 간 비방전에 불을 지핀 경우다.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은 영어로 자신을 업신여기는 듯하게 말한 이준석 전 대표를 향해 “도덕이 없는 건 부모 잘못이 크다”고 밝히며 남의 부모를 욕해 갈등을 빚었다.

이 같은 양상은 내년 4·10 총선이 다가오자 상대 당의 기선을 제압하거나 당내 입지 싸움에서 절대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해졌기 때문일 테다. 더욱이 당 강경파를 중심으로 발언의 수위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저마다 강성 지지층에 구애하는 동시에 상대와의 전선을 명확히 하려는 포석으로 읽힌다. 앞으로 총선 기간에 공천 탈락 위기에 처하거나 유권자의 주목을 끌지 못하는 정치인이 지지층을 의식해 험악한 막말에 더 기대는 악순환이 반복될 게 우려된다.

이를 지켜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아귀다툼, 이전투구, 목불인견 같은 단어가 떠오른다. 격렬한 정쟁에 말싸움질까지 더해 경제 살리기와 민생 안정에 뒷전인 정치권 행태는 우리 정치문화를 후퇴시키고 정치 불신과 혐오감을 키운다. 욕먹어도 싸다. 고물가·고금리에 신음하는 서민층이 여야와 국회에 대해 “그저 욕만 튀어나온다”고 불평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국민적 비난을 받으며 욕먹고 있는 국회의원. 이들에게 욕설과 막말을 삼가고 지위에 맞는 품격을 지켜달라고 요구하는 건 무리일까. 악담의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져 소모적인 대치 정국을 이어가는 모양새는 여야 협치를 위해서라도 근절돼야 마땅하다. 반목과 분열을 조장하는 날선 언쟁은 정치개혁 대상이 아닐 수 없다. 부디 여야가 국가와 국민을 위한 도리부터 다하는 정치를 펼쳐 나가길 바란다. 정치권이 더 이상은 욕먹지 않고 ‘욕봤다’는 칭찬을 자주 듣게끔 노력할 일이다. 여야가 서로에게 욕봤다고 덕담하는 모습도 기대한다. 이러한 바람직한 광경은 국민 의식 수준도 높아져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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