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마지막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서정아 소설가

초등 졸업반인 아이가 얼마 전 수학여행을 갔다. 평소 학교 가는 시각보다 일찍 출발해야 했기 때문에 새벽녘에 일어나 아침밥을 챙겨주고 평소보다 뚱뚱해진 가방을 등에 메어준 다음 현관문 앞에서 안아주며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했다. 아이는 마냥 들떠 있기만 했는데 나는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수학여행에 대해 전 국민이 갖게 되어버린 트라우마 때문이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누군가의 뒷모습을 볼 때면 언제나 그런 막연한 슬픔과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 곧 돌아오겠다고 했지만 그게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 곧 다시 보자고 했지만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런 내 마음을 누가 알았다면 불길하게 별생각을 다 한다고 핀잔을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한 번씩 전화도 하고 인증샷도 보내겠다던 아이는 연락 한 통이 없다가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전화를 걸어왔다. 도서관에 있었던 터라 종종걸음으로 서둘러 나가서 전화를 받았는데 내 기대와는 달리 안부 전화를 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체크카드에 넣어준 용돈을 이미 다 써버렸는데 꼭 사고 싶은 인형이 있다고 했다. 이건 여기서밖에 살 수가 없고 이걸 사지 않으면 평생 아쉬울 것 같고 어쩌고 하면서 제발 용돈을 조금만 더 넣어주면 안 되냐는 이야기였다. 용돈에 대해서는 이미 약속한 바가 있었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하려다가, 혹시나 이 통화가 우리의 마지막이면 어떡하나, 그럼 아이와 나 사이의 마지막 기억은 이런 하찮은 실랑이로 남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에 허락을 해주고 말았다.

언제나 마지막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이들에게 진심을 말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미루지 말아야겠다

마음을 다해 성실히 써나가야겠다

나의 태도가 교육적으로 좋지 않은 방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식으로 허용을 해주기 시작하면 아이의 버릇은 나빠질 것이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먼 곳에서 걸려온 전화였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고 나는 스스로에게 변명했다. 나와 그 애의 거리 사이에는 한 시간 안에도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나는 어떤 긴급한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단숨에 그 애에게 달려갈 수 없으며, 내일 보자고 평범한 인사를 했지만 내일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거였으니까. 물론 아이는 다음 날 무사히 돌아왔다. 나에게 줄 선물을 꼭 사오겠다고 했던 말은 까맣게 잊었는지 자기 기념품만 잔뜩 사 가지고 해맑은 얼굴로 돌아왔다. 결과적으로 나는 아이 버릇만 나쁘게 만든 일관성 없는 엄마가 되었지만, 다시 그 순간이 돌아온다고 해도 아마 여전히 그럴 것 같다.

그러고 나서 며칠이 지난 후에는 길을 가다가 꽤 무서운 경험을 했다. 어떤 건물 옆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내 왼쪽 옆 바닥으로 백팩만한 크기의 쇳덩어리가 쿵 소리를 내며 떨어진 것이다. 간판의 일부였는지 건물의 부속물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그 순간, 삶이 어떤 식으로든 갑작스럽게 끝날 수도 있다는 것을 관념이 아닌 실제적 가능성으로 체감했다. 내가 지나가는 위치가 30cm만 더 왼쪽이었더라면 나는 그 쇳덩어리를 머리에 맞았을 것이다. 그런 상상을 하자 아찔했는데, 그러면서 동시에 든 생각은 나에게 다가오는 매 순간을 정말 잘 살아내야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누구에게도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했는데 그런 식으로 끝이 갑작스럽게 찾아온다면, 내가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보여준 것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고 되짚어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정말 좋은 기억이면 좋겠다는 바람도.

언제나 마지막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이들에게 진심을 말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미루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지금 내가 쓰는 글이 어쩌면 내 삶의 마지막 문장일 수도 있다는 절실함 속에서, 안이하거나 진부한 태도에 빠지지 않도록 애쓰며, 마음을 다해 성실히 써나가야겠다는 생각을 이번 연말의 작은 다짐으로 삼아 본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