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진의 타임 아웃] 땀방울로 쓰는 드라마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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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부 차장

최근 <부산일보> 인사 발령 이후, 축구 기자로서 첫 번째 경기를 취재하러 지난 26일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을 찾았다. K리그2 부산 아이파크와 충북청주FC의 시즌 최종전. 부산 입장에선 승리하면 2부리그 우승과 1부리그 승격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중요한 경기였다. 1 대 0으로 앞선 후반 추가시간, 부산은 통한의 동점골을 허용해 다 잡은 ‘1부 직행 티켓’을 놓쳤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부산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거나 드러누웠고, 몇몇 관중은 눈물을 훔쳤다.

기자석에서도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날 승부가 얼마나 극적이고 안타까웠는지는 경기 직후 양 팀 감독의 인터뷰에서도 나타났다. 부산 박진섭 감독은 “하늘이 오늘 우리 편이 아닌 것 같다”고 했고, 충북청주 최윤겸 감독은 “비기고도 죄송한 마음이다”며 고개를 숙였다. 특히 최 감독은 5년 전 부산의 지휘봉을 잡은 적이 있기에 더욱 복잡한 심경이었을 것이다.

며칠 뒤 찬찬히 그날 경기를 복기해 봤다. 몇 차례 완벽한 골 찬스가 골대를 맞거나 살짝 빗나가는 등 분명 부산에 운이 안 따랐다. 그런데 더 기억에 남는 건 충북청주 선수들이었다. 이기든 지든 상관없는 경기였지만 선수들은 결승전마냥 끈질기게 뛰었다. 현실 사회는 요행과 봐주기, 반칙과 특권이 난무하지만, 이날 그라운드만큼은 스포츠의 정정당당함이 살아 있었다.

부산은 2012년 K리그 승강제 도입 이후 7년을 2부 리그에서 전전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축구 명가’로 군림했다. 기자가 중학생이던 1997년, K리그와 리그컵 우승 등 3관왕을 차지했던 대우 로얄즈(부산 아이파크의 전신)의 푸른색 유니폼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김주성·이민성·안정환 등 팀을 거쳐간 스타 선수도 여럿이었다. 명문 구단 시절 획득한 수많은 트로피는 지금 부산 아이파크 클럽하우스 한편에 옹색하게 자리하고 있다. 구단의 명성을 고려하면 번듯한 전시관이라도 지을 만하지만, 전용구장조차 없는 게 부산 프로축구의 현주소다.

명가 재건을 구단과 선수들에게만 맡겨선 안 된다. 팬들의 관심부터 끌어모아야 한다. 지난 26일 K리그2 최종전에서는 평소보다 배 가까이 많은 5764명의 관중이 찾았지만 드넓은 경기장을 채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서포터스의 거센 함성도 원정 응원단을 압도하진 못했다. 하루 전, K리그1 서울FC 경기가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에는 3만 6007명이 입장했다. 서울FC는 올 시즌 경기당 2만 2633명 관중을 동원해, 2008년 롯데 자이언츠의 기록(2만 1901명)을 넘어서며 한국 프로 스포츠 역사를 새로 썼다. 부산은 오는 6일 홈, 9일에는 원정(K리그1 11위 연고지) 경기로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른다. 정정당당하게, 땀방울로 써 내려가는 드라마가 궁금하다면 두 경기 직관 기회를 놓치지 마시길.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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