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엑스포, 잔치는 끝났다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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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세계박람회 개최지 투표 결과
사우디 119표 부산 29표 '충격패'
길고 뜨거웠던 유치 여정 허망한 끝
시, 참담한 성적표 어설픈 위로보다
살기 좋은 도시 부산 위한 새 판 짜야
조직 쇄신·정책 내실 다지는 계기 삼길

잔치는 끝났다. 그것도 허망하게….

2030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 유치를 내걸고 부산이 달려온 시간은 짧게는 국가사업으로 지정돼 본격 유치활동을 벌인 1년 6개월, 길게 보자면 엑스포 추진 방안을 마련하고 전담 조직을 구성한 9년여 전으로 돌아간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정부와 대기업 등 경제계, 민간단체 등 실로 수많은 이들이 대한민국 원팀이 되어 힘을 모았고 목표를 향해 가열차게 달렸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지난달 28일 프랑스 파리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진행된 개최지 투표에서 우리의 최대 경쟁국 사우디는 투표에 참여한 165개 국가 중 119개 국가의 표를 싹쓸이했다. 반면 대한민국 부산은 29표. 사우디 리야드와 무려 90표 차이가 났다. 17표를 받은 이탈리아 로마와의 표 차이가 오히려 적었다. 사우디는 그야말로 역대급 득표 수로 2030월드엑스포 유치권을 따냈다.


이날 기자는 2030월드엑스포 개최지 투표 결과를 신문 지면에 싣기 위해 편집국을 지켰다. 다수의 방송사들이 생중계로 마지막 5차 프레젠테이션(PT) 현장을 전했다. 이어 30여 분 뒤 1차 투표 결과가 나왔을 때, TV 화면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다시 보고 또 확인했다.

프랑스 현지에서 비관적인 전망이 우세하다는 분위기를 투표 하루 이틀 앞서부터 들어왔던 터라 사우디에 밀리겠구나 하는 짐작은 해두고 있었다. 5차 PT를 지켜보면서 무언가 짜임새가 부족하고, 핵심을 찌르지 못한 채 겉도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은 들었지만, 그럼에도 선전을 기대했다. 마지막 순서였던 사우디의 PT가 끝나자 부산보다 더 많은 박수와 환호가 들린 것도 혼자만의 착각이기를 바랐다. 이런 모든 불안감은 개표 결과를 받아들자 현실로 확연히 다가왔다.

29라는 숫자는 또 어떤가. 결과를 지켜보던 시민들에게 그야말로 충격적인 숫자였다. 충격은 잠시 현실 부정으로 이어졌지만 금세 실제 상황임을 자각했고 이후로는 분노와 황당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우리는 그동안 무얼 했나. 올 한해 부산시청을 담당한 출입기자로서 내가 보고 듣고 취재했던 것들은 모두 무엇이었나. 낯이 뜨거워졌다. 이 숫자로는 2035년 엑스포를 감히 입에 올리기도 힘들다. 아니,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지난주 부산시청은 묵묵함을 가장한 침통함이 지배했다고 한다. 유치 최일선에 나섰던 엑스포추진본부는 물론 시장의 최측근인 정무라인과 실국장, 그 아래 실무를 주도하는 모든 직원들이 참패에 그친 엑스포 유치전에 대해서는 쉬쉬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해들었다. 부산의 미래를 열어줄 ‘만능 열쇠’처럼 각인됐던 엑스포 유치라는 목표가 물거품처럼 사라졌으니, 부산시 공무원들도 갑자기 갈 길을 잃고 무엇을 해야 할지 뚝 떨어진 의욕 속에 한숨만 나오는 것이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이제는 냉정을 찾자. 참담한 결과를 두고 서로 어설프게 위로하는 시간은 지난 며칠로 충분했다. 최대 70표까지 얻을 수 있다며 대한민국 대세론을 설파했던 무책임한 판세 분석이나, 1차 투표도 아닌 2차 투표에서 표를 줄 것을 약속 받았다며 근거가 부족한 대역전극을 내세우며 한껏 기대감을 부풀렸던 득표 전략도 지금 시점에서 되새기면 허망함만 더할 뿐이다.

부산시는 지금부터 부산 발전의 새 판을 짜라. 엑스포라는 메가 이벤트 개최가 부산이 제대로 부흥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주장했지만, 이제 그것은 더이상 부산의 것이 아니다. ‘기승전 엑스포’라는 우스갯소리가 대세가 됐을 만큼 굵직한 사업들의 향배가 엑스포 유치 및 성공 개최로 귀결되긴 했지만, 활력 넘치고 살기 좋은 도시의 저력은 반드시 그런 것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집 가까이 좋은 문화, 좋은 환경, 좋은 이웃으로 즐겁고 행복한 도시’를 표방한 박형준 부산시장의 1호 공약, 15분도시 조성사업을 시정 전반으로 확대·연결한다거나 지산학 협력, 창업 생태계 활성화, 아이 낳아 키우기 좋은 환경 조성 등의 정책을 촘촘히 연계해 젊은 층 인구 유입을 확실히 늘릴 수도 있고, 초고령사회 부산의 현실을 장점으로 승화시켜 노인이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쪽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볼 필요도 있다. 엑스포 유치 과정에서 세계에 알린 부산의 존재감을 유지·확대시켜 글로벌 허브도시로 안착시키는 것도 중요한 사안이다.

무엇보다 진정 시민들이 원하는 부산의 현재와 미래 청사진이 어떤 그림인지 제대로 짚어내주길 바란다. 그들이 지켜보고 있다. 더불어 박형준 시정 2년 반을 맞은 부산시가 조직에 쇄신을 기하고 시정에 내실을 더해야 할 때다. 새롭게 시작하자. 망연자실 주저앉아 있지 말자. 부산의 도전은 계속되니까. 부산의 열정은 또다시 타오를테니까.

김경희 편집부장 miso@busan.com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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