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일본의 고려대장경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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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종 임금 때다. 일본에서 사신이 왔다. 임금이 물었다. “무엇을 바라고 온 것인가?” 사신이 답했다. “오로지 대장경 얻기를 간청합니다.” 임금이 말했다. “대장경은 우리나라에서도 귀하다. 그러나 특별히 한 부 주겠다.” 사신은 감읍했다. “크신 은혜,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세종실록에 기록된 장면이다. 여기서 대장경은 팔만대장경, 즉 고려대장경이다. 세종이 하사한 건 고려대장경의 인쇄본이었다. 일본이 조선에 고려대장경을 요청한 것은 그때만이 아니다. 기록으로 확인되는 것만 60여 차례다. 대장경은 불교 경전을 집대성한 것이다. 무로마치 바쿠후 이후 일본은 불교를 통해 안녕의 기틀을 마련코자 했으나, 17세기까지는 직접 대장경을 제작할 능력이 없었다. 능력이 없으니 가까운 조선에서 인쇄본이라도 얻고자 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고려대장경의 정밀함은 다른 어느 나라 대장경이 미치지 못할 바였다.

일본의 요청에 조선 조정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대개 거절했으나, 하도 떼를 쓰는 바람에 간혹 요청을 들어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일본으로 건너간 고려대장경 인쇄본은 40질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 하나가 도쿄의 조조지(增上寺)에 안치돼 있다. 조조지는 남다른 절이다. 일본 전국시대를 마감한 도쿠가와 이에야스 가문의 호다이지(菩提寺)였다. 호다이지는 우리로 치면 왕실 원찰(願刹·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가문의 안녕을 기원하는 절)이다. 조선에서 건너간 여러 고려대장경 중 하나를 도쿠가와 가문이 입수해 조조지에 안치한 것으로 짐작된다.

최근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에 조조지의 고려대장경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신청할 예정이라고 해 우리 국내에서 반발이 일고 있다. 일본이 주제넘은 일을 벌인다는 것이다. 우리로선 충분히 지적할 만한 사안이다. 하지만 달리 볼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일본 정부는 “15세기 이전에 만들어진 대장경이 거의 완전한 상태로 있는 것은 유례가 없다”고 등재 추진 배경을 설명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더구나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은 2007년에 이미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고, 조조지의 고려대장경이 그런 팔만대장경판을 조선에서 인쇄한 것임은 세상이 다 안다. 일본이 자기들이 직접 만든 대장경이라고 우기지 않는 다음에야 애써 비난할 필요까지야 있을까 싶다. 일본에 의해 등재된다고 해도, 그것이 고려, 즉 우리의 유산임은 불변의 사실 아닌가.

임광명 논설위원 kmyim@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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