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사라지는 오징어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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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전후로 기억된다. 못생긴 남자를 오징어에 비유하는 밈들이 유행처럼 번졌다. 영화 시사회 무대 인사에 올라온 장동건이라는 말도 있고 영화 ‘아저씨’에 등장하는 원빈이라는 설도 있다. 이들을 보고 ‘생긴 게 뭐 그냥 그렇네’하고 생각하던 어떤 여성이 옆자리 남자 친구를 봤는데 웬 오징어가 팝콘을 먹고 있더라는 이야기다. 그렇게 오징어는 못생긴 남자의 대명사가 됐다. 오징어가 평면적이어서 이목구비 뚜렷한 미남들과 비교될 수 있다는 성형외과 전문의의 분석까지 뒤따랐다.

옛 문헌에도 오징어는 부정적 이미지로 묘사된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 ‘물 위에 죽은 듯 떠 있다가 까마귀가 다가오면 재빨리 다리로 끌고 들어가 잡아먹었다’고 기록했다. ‘까마귀 도둑’이란 의미의 ‘오적어(烏賊魚)’에서 오징어가 유래했다는 설이다. 정약용은 〈다산시문집〉에서 오징어를 고고한 백로와 대비해 더럽고 사악한 존재로 그렸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오징어 먹물로 쓴 글씨는 해가 지나면 없어져 빈 종이만 남는데 사람을 간사하게 속이는 자가 이 먹물을 쓴다’고 했다. 지켜지지 않는 약속을 ‘오적어 묵계(墨契)’라고 한 연유다.

오징어로서는 참 억울할 일이다. 오징어는 사실 ‘국민 수산물’이다. 통계에 따라 들쑥날쑥하지만, 평균적으로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많이 먹는 수산물이 오징어다. 새우, 멸치, 굴, 명태, 고등어, 참치, 광어, 갈치, 낙지 등의 순으로 뒤를 잇는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의 2020년 해양수산 국민 인식도 조사에서도 한국인이 제일 좋아하는 수산물은 오징어로 나타났다. 2위 고등어를 앞섰다. 오징어에 대한 나쁜 기록만 있는 것도 아니다. 허준의 〈동의보감〉은 ‘기를 보해 월경을 통하게 한다. 오랫동안 먹으면 정(精)을 많게 해 어린이를 낳게 한다’고 적었다.

국민 수산물 오징어 어획량이 급감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2016년부터 어획량이 크게 줄고 값이 폭등하면서 ‘금(金)징어’로 불렸는데 2020년부터 회복되는 듯하다 다시 감소세로 돌아선 것이다. 12월 현재 연근해 오징어 누적 위판량이 3만t 정도로 추산되는데 전년 대비 30%, 2021년 대비 절반이나 감소했다. 2010년까지만 해도 연간 20만t에 육박했던 걸 감안하면 씨가 마르는 수준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수온 상승과 중국 어선의 싹쓸이 조업 등이 원인으로 지목되는데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일이 아니다. 동해에서 자취를 감춘 명태의 전철을 밟게 된다면 큰일이 아닌가.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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