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단상] 소비자들은 '돈쭐' 낼 준비가 돼 있다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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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성 기획취재부 차장

갈수록 세상이 각박해지고 있지만, 언 가슴을 녹여주는 따스한 이웃들의 이야기가 전해올 때면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확산되고 있는 ‘돈쭐 문화’를 보면 더욱 그렇다. ‘혼쭐나다’라는 말에서 온 ‘돈쭐’은 선행을 한 가게의 물건을 많이 팔아주자는 역설적 의미의 신조어. 돈쭐 문화는 착한 가게를 널리 알리자는 선의를 담고 다양한 세대로 퍼져 나가며 이웃과 환경 등 사회적 가치를 생각하며 상품을 소비하는 ‘착한 소비’를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최근 돈쭐을 부르는 가게의 미담들 사이로 혼쭐을 내고 싶은 뉴스가 들려 씁쓸하다. 식품 기업과 외식 업체들의 과도한 꼼수 가격 인상 행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식품 기업의 꼼수를 설명하는 용어도 나열해보니 참 많다. 제품 가격은 그대로 두고 양을 줄인 ‘슈링크플레이션’, 가격을 동결하거나 약간 인상하는 대신 값싼 원료를 사용해 원가 부담을 줄여 제품의 질을 떨어뜨리는 ‘스킴플레이션’, 물가 상승을 명분으로 폭리를 취하기 위해 가격을 은근슬쩍 올리는 ‘그리드플레이션’까지 기업들의 꼼수는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듯하다.

식품 가격 인상은 가계에 고스란히 큰 부담으로 전해진다. 소비자 단체나 언론에서는 소비자들이 더욱 주의 깊게 제품의 가격, 품질 등을 꼼꼼히 살펴 소비할 것과 소비자 주권 의식을 바탕으로 기업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불매 운동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선택적 소비마저 불가능한 전방위적 꼼수 가격 인상에 소비자들이 대항할 방도는 사실상 없다.

정부가 뒤늦게 엄중히 문제를 인식하며 실태 조사에 나서는 등 관련 기업에게 으름장을 놓고 있지만 시장 분위기는 영 신통찮다. 프랑스의 한 대형 마트에서는 용량을 줄인 제품을 따로 모은 진열대가 등장했고, 브라질 등에서는 용량 고지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시행하고 있다. 정부도 소비자가 제품 용량 등 변경 사항을 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제품 단위 가격 표시 정보 등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꼼수 가격 인상을 제대로 견제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일부 품목들의 경우 원재료 가격이 하락했음에도 올렸던 가격이 내려가지 않고 있다. 더군다나 많은 식품 기업들은 앞에서는 원가 상승으로 어려움을 토로하며 가격 인상을 단행하고도 뒤에선 막대한 영업 이익을 올리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 꼼수 가격 인상 중에는 물가 상승에 부당 편승한 사례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원자잿값과 같은 정보의 비대칭성 등을 감안할 때, 소비자들은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 있었던 건지 모른다.

얼마 전 외신에서 본 캐나다의 피자 체인점 ‘피자 피자’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업체는 가격 인상 도미노 속에 피자 가격은 그대로 두고 양을 늘려 소비자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매출도 크게 늘었다. 다 같이 어려운 시기에 기업의 이윤을 일부 포기하며 슈링크플레이션이나 스킴플레이션과 정반대의 전략을 쓴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원재료 가격이 하락했다며 가격을 과감하게 내릴 줄 아는 기업, 안팎으로 어려운 경제 상황을 일부 짊어질 줄 아는 기업이 등장하길 간절히 바란다. 소비자들은 언제든지 ‘돈쭐’ 낼 준비가 돼 있으니 말이다.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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