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고차방정식' 부산 공천 푸는 키워드는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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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훈 서울정치부장

'중진 같은 정치 초보' 복잡한 유권자 요구
역대 총선 어느 한 쪽만 채우려다 '폭망'
선수, 역량, 참신함 속 '균형'이 키워드
시민 기대감 충족하는 후보군 발굴 기대

국민의힘이 이달 중순께 22대 총선 공천관리위원회를 띄운다고 한다. 부산을 비롯해 보수 강세 지역인 영남의 역대 선거는 국민의힘 계열 정당의 공천에서 향배가 갈렸다. 2016년 총선에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부산에서 역대 최대인 5석을 획득한 동력은 ‘진박 감별사’, ‘옥쇄 파동’으로 회자되는 여당 내 공천 갈등이었다. ‘부산 18개 전 지역구 석권’과 ‘절반 확보’를 각각 목표로 세운 여야의 성패가 갈리는 지점도 국민의힘 공관위가 어떤 공천을 하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

공천에 대한 유권자들의 요구는 사실 이상적이면서, 또 모순적이기도 하다. 만년 ‘신뢰도 꼴찌’인 국회의원들이기에 선거가 다가오면 “싹 다 갈아야 한다”며 대대적인 교체를 희망하지만, 이를 대체할 초선이 미숙할 것이라는 전제는 허용치 않는다. ‘허구한 날 싸움질이나 하는 정치’를 비판하면서 정작 날 선 공격 대신 온건한 언어로 타협을 모색하는 중도파는 ‘존재감이 없다’는 박한 평가를 받기 일쑤다. 단어 자체부터 이미 부정적인 ‘낙하산’은 거부하지만, 그렇다고 토착 세력이 판을 주도하는 것도 못마땅해 한다.

이런 복잡다단한 유권자의 심리를 100% 만족시킬 수 있는 공천 방정식은 풀리지 않는 수학계 난제 만큼이나 까다롭다. 다만 ‘폭망’ 평가를 받는 역대 공천이 대부분 한 가지 답에 집착했다는 점을 상기하면 어렴풋하게나마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3년 전 총선에서 김형오 공관위는 ‘싹 다 가는’ 데 방점을 찍었다. 당시 부산 현역 12명 중 7명(58%)이 공천에서 교체됐고, 홍준표, 김태호 등 중진들은 험지 출마를 압박 받았다. 여론도 “속 시원하다”며 호의적으로 반응했다. 그러나 정작 ‘영남 물갈이’의 이유인 수도권 중도층 표심은 움직이지 않았고, 전국적으로 참패를 면치 못했다. 더 큰 문제는 교체된 현역의 빈 자리를 급하게 채운 인물들에 대해 “이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나온다는 점이다. 3년 반 동안 여의도 정가에서 부산 일부 초선들을 두고 “A 의원이 질의하는데, 내가 다 조마조마하더라”, “B 의원은 지역에 무슨 일이 그렇게 많아서 국회에서 코빼기를 볼 수가 없느냐”는 말을 심심찮게 들었다. 2008년 공천은 이명박 대통령 친정 체제 구축이 영남 공천의 키워드였다. 친이(친이명박)계 핵심의 주도 아래 박근혜 전 대표 세력은 물론 합리적 소장파까지 무더기로 쳐내면서 부산을 비롯한 전국에서 친박 무소속 바람이라는 역풍이 불었다. 그 여파가 이후에도 계파 간 공천 보복의 악순환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최악의 공천이었다.

물론 참신하고 능력 있는 ‘어벤져스급’ 후보군으로 잡음의 소지를 원천 차단하면 될 일이지만, 갈수록 혐오 대상이 되어가는 정치판에 발을 들이려는 인재들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그 나물에 그 밥’ 같아도 그 중 조금이나마 더 나은 지도자 감을 건져 올려야 하는 게 유권자들이 처한 냉정한 현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개인적으로 경쟁력 있는 공천의 키워드는 ‘균형’이라고 본다.

일단 21대 총선에서 무너진 ‘선수별 균형’ 회복이 필요하다. 닳고 닳은 중진이 무슨 역할을 하느냐는 부정적인 시각이 적지 않지만, 모래알 같은 부산 여권의 응집력 부족은 소위 ‘좌장’의 부재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 현안을 관철하기 위한 ‘실세’의 역할도 긴요하다. KDB산업은행 이전, 부산엑스포 전폭 지원 등 윤석열 대통령의 ‘부산 양대 축’ 구상의 탄생과 강력한 실행 의지는 지역 친윤(친윤석열) 실세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존재감 없는 초선들이라도 ‘도토리 키재기’를 해서 지역 정치권의 ‘허리 라인’을 채워야 한다. 오직 재선을 위해 지역구만 파고 드는 ‘골목 의원’, 도무지 의정활동의 지향점을 알 수 없는 ‘오리무중 의원’들은 집으로 보내더라도 노력으로 가능성을 보인 초선에겐 기회의 문을 열어줘야 한다. 젊고 실력 있는 ‘낙하산’ 한 두 명쯤은 지역 정치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카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지역 출신만 중용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건 지난 총선의 확실한 교훈이다. 또 현장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영남은 막대기를 꽂아도 된다’는 낡은 관념에서 도출된 해법을 좇다 보면 지난 번처럼 ‘오염된’ 물갈이를 되풀이할 수 있다.

민주당의 부산 공천은 대부분 윤곽이 드러나 큰 변수가 없는 상황이지만, 여야 간 최소한의 균형 역시 지역 정치 발전을 위해 필수불가결하다. 가덕신공항, 북항재개발 등 지역의 주요 이슈들이 현실화 된 데에는 지역 정치에 경쟁 체제가 도입되면서 각 당의 유권자 공략전이 한층 치열하게 전개된 결과다. 내년 초 여야가 각고 끝에 도출한 후보자 명단을 본 지역 유권자들이 “이 정도면 나쁘지 않네”하고 반응할 수 있을까? 각 당의 분발을 기대한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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