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인 친일’ 늪에 빠진 부산 첫 동인문학상
정영선 소설 <아무것도…>
수상 소식에 논란 확산
부산작가회의 7일 성명서
정 작가 수상 아쉬움 표명
“상 아닌 수상자를 도마에?”
정 작가도 이틀 만에 반박
우리는 여전히 ‘찢긴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찢긴 시대에 대한 자기 성찰은 진지해야 할 테다. 최근 부산의 정영선 소설가가 장편소설 <아무것도 아닌 빛>으로 제54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상의 수상은 부산 소설가로서 처음 있는 일이다. 당연히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그렇지 못한 저간의 난해한 사정이 있다.
이 상이 뼛속까지 친일 문인이었던 김동인을 기리는 상이라는 것이다. 김동인의 친일 수준은 아주 가팔랐다고 한다. 부산 문인들의 지적에 따르면 “김동인은 해방 당일까지 시국에 공헌할 작가단을 구성하겠다고 조선총독부를 찾아간 정신 나간 사람”이며, 1944년 조선인 학병 첫 입영 때 ‘내 몸은 이제부터는 내 것도, 가족의 것도 아니요, 황공하옵게도 폐하의 것’이라는 글도 서슴없이 썼던 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동인문학상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뜨겁다. 친일 문인을 기리는 이 상을 폐지하자는 주장은 2016년께부터 전국적으로 나왔다. 참고로, ‘친일파 문학상’ 시비에 휩쓸렸던 미당문학상은 2018년, 팔봉비평문학상은 지난해를 거르고 올해 폐지됐다.
부산 문단에서는 동인문학상의 수상을 놓고 이달 벽두부터 논란이 일고 있다. 급기야 지난 7일 부산작가회의(회장 김수우)가 ‘요산 정신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성명서를 내기에 이르렀다. 성명서가 ‘요산 정신의 실종’을 운운한 것은, 이번 동인문학상 수상자인 정 소설가가 요산김정한기념사업회(이하 기념사업회) 이사인 데다가 특히 2018년 요산김정한문학상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요산김정한문학축전의 운영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성명서 시각에 따르면 요산과 동인은 전혀 양립할 수 없다. 요산이 일본제국주의에 꼿꼿이 저항했다면, 동인은 완전히 반대쪽에서 철저히 협력했기 때문이다. 문학상을 받는 것은 그 작가의 정신을 고양하겠다는 서원에 다름 아닌 것인데 요산김정한문학상을 받은 작가가 동인문학상을 받는 것은 ‘문학적 모순’이라는 것이다.
지난 9일 정 소설가의 반박문이 나왔다. 그는 “심사과정의 공정함을 믿었고, 지역 밖에서 독자를 만나고 싶어 수상자가 됐는데 이렇게 난도질을 당해야 하는가”라며 “저에게 축하 전화와 문자를 보내준 그 수많은 분들은 친일문학의 동조자인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정말 뜻을 세웠으면 힘 있는 자에게 꾸준히 대응해서 뭔가를 바꾸어야지 만만한 지역작가 한 사람을 짓이겨서 무얼 얻겠다는 건가”라고 반박했다.
이런저런 아쉬운 점이 있다. 첫째 친일파 문학상 ‘운영’ 자체에 대한 공방이 아니라, 그 상의 수상을 놓고 ‘수상자 개인’에 대한 공방이 이뤄지는 상황이 그것이다. 어느 쪽의 전략이 작용하는지 묘하게도 근년 양상은 안타깝게 그런 식으로 흘러가고 있다.
둘째 동인문학상 수상과 관련한 문제 제기는 이달 초 기념사업회 내부 단톡방을 통해 먼저 나왔는데 이때 수상자가 충분한 입장 표명을 못하고 넘겨버린 점이 있다. 그는 ‘며칠 했던 번민’의 구체적 내용을 밝히기보다는, 짧게 ‘분단이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는 재일조선인의 말을 가져오는 것으로 해명을 대신했다. ‘친일’을 ‘분단’으로 얼버무린 그 해명이 섬세하고 진지한 성찰의 결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미진한 해명이 부산작가회의 성명서가 나오게 된 데 한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성명서는 “요산김정한문학상을 받은 작가가 요산의 발바닥에도 미치지 못하는 친일 문인을 기리는 동인문학상의 품에 안기는 일이 되풀이 되고 있다”며 “이번에 문제가 된 작가는 기념사업회 직책에서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도리”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수상자는 “친일문학을 척결한다는 대의가 고작 기념사업회 이사직 사퇴 요구인가”라고 묻고 있다. 아프게도 이런 것이 우리가 여전히 감당하면서 대면하는 ‘찢긴 시대와 역사’의 한 양상일 것이다.
현재, 상을 받는 어쩔 수 없는 개인의 선택은 이미 이뤄진 상황이다. 상충하는 입장 표명도 어느 정도 이뤄진 것 같다. 무엇보다 문학인은 글을 통해 정신을 표현하고 삶을 말하고 사는 이들이라고 했다. ‘문학이 인간의 정신을 고양시킨다’는 성명서의 한 문장은 허투루 삼킬 것이 아니다. 입장의 충돌 속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점은, 결론이 아니라 논의 과정 자체가 완성도 있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의 문학 사회가 이번 문제를 어떻게 성숙하게 승화시키느냐, 그것이 문제다.
최학림 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