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플스토리] 아픈 개들 생명 살리는 헌혈 영웅을 아시나요

김수빈 부산닷컴 기자 suvel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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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아임도그너헌혈센터에 방문한 반려견이 헌혈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헌혈센터 제공 KU아임도그너헌혈센터에 방문한 반려견이 헌혈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헌혈센터 제공

반려견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응급 수술 시 수혈이 필요하다. 이때 필요한 혈액은 공혈견과 헌혈견으로부터 공급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공혈견은 오로지 사육 시설에서 채혈 목적으로 길러져 윤리적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반려동물 수가 늘어나면서 안정적 헌혈 공급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해 8월 아시아 최초로 'KU아임도그너헌혈센터'가 건국대학교 부속 동물병원에 문을 열어 눈길을 끈다. 건강한 반려견 헌혈 문화 확산을 위해 센터와 함께 반려견 헌혈을 들여다본다.

지난해 8월 아시아 최초로 문을 연 KU아임도그너헌혈센터는 윤리적인 혈액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 하고 있다. 헌혈센터 제공 지난해 8월 아시아 최초로 문을 연 KU아임도그너헌혈센터는 윤리적인 혈액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 하고 있다. 헌혈센터 제공

■국내 반려견 수혈, 대부분 공혈견으로부터


현재 국내 개·고양이 혈액의 대부분은 민간 업체인 '한국동물혈액은행'에서 공급된다. 업체는 원활한 혈액 공급을 위해 공혈견 농장을 운영한다. 문제는 2015년 언론과 동물단체를 통해 공혈견들의 열악한 사육 실태가 세상에 드러나면서 불거졌다. 당시 사육견 200마리는 인근 군부대서 수거한 음식물 쓰레기를 먹으며 좁은 뜬장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이들은 건강이 우려될 수준의 반복적인 채혈을 당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져 큰 비난을 받은 업체는 뜬장을 철거하고 견사를 짓는 등 처우 개선에 나섰다. 하지만 외부인 출입을 금지하고 있어 정확한 개선 정도는 확인하기 어렵다. 그뿐만 아니라 '공혈 동물'이라는 존재가 오로지 피를 제공하는 목적으로 길러지는 만큼 윤리적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최근까지도 업체를 통해 혈액을 구매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어서 지역 동물병원들이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다.

KU아임도그너헌혈센터 최희재 책임수의사는 "공혈견의 처우와 동물 복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오지만 아직까지도 반려인들 대부분이 공혈견이 처한 현실을 모르고 있다"며 "공혈견의 수를 더 이상 늘리지 않고 기존 공혈견을 구조하기 위해 반려견 헌혈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건국대는 현대자동차와 함께 공혈견 문제를 알리고 헌혈을 독려하기 위해 2019년부터 반려견 헌혈 캠페인을 시작했다. 또 지난해 8월 반려견의 자발적인 헌혈과 혈액관리를 전담하는 KU아임도그너헌혈센터를 개소했다.


방문한 대형견이 뛰놀 수 있도록 마련된 KU아임도그너헌혈센터 놀이터. 헌혈센터 제공 방문한 대형견이 뛰놀 수 있도록 마련된 KU아임도그너헌혈센터 놀이터. 헌혈센터 제공

■반려동물 헌혈센터, 왜 필요할까


반려동물에게 수혈이 필요할까 싶지만 외상으로 인한 출혈, 염증과 종양, 면역 질환 등으로 인해 혈액을 필요로 하는 동물의 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사람의 경우 헌혈 문화가 정착되었지만 일부 혈액형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어 종종 급하게 헌혈할 사람을 찾는다. 반려동물의 경우 혈액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제때 수혈을 하지 못해 동물이 안타깝게 생명을 잃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헌혈센터는 '매혈'이 아닌 '헌혈'을 통한 윤리적인 혈액 공급망을 구축하려고 노력한다. 응급 반려동물이 수혈을 받지 못하는 사태를 방지하고, 수혈을 필요로 하는 동물이 언제든지 필요한 혈액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헌혈센터는 현대자동차 후원으로 운영하는 공익 기관으로 반려견 헌혈 문화 조성과 확산을 위해 지속적으로 헌혈 캠페인을 진행한다. 그 결과 최근 1년간 약 200마리의 헌혈견이 동참해 300마리의 생명을 살렸다.

최 책임수의사는 "불과 4년 전 캠페인 초기만 해도 '반려견 헌혈'이란 개념 자체를 낯설어 하는 분이 대다수였다"며 "지속적인 반려견 헌혈 캠페인을 통해 대중들이 알게 되면서 센터 기준 신청 건수가 지난해에 비해 배로 늘어날 만큼 참여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보유 혈액이 보관 기간 내에 전량 소진될 정도로 공급이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헌혈을 통해 많은 반려견의 생명을 살린 럭키가 현역 생활을 마무리하고 최근 은퇴했다. 헌혈센터 제공 헌혈을 통해 많은 반려견의 생명을 살린 럭키가 현역 생활을 마무리하고 최근 은퇴했다. 헌혈센터 제공

■헌혈, 건강한 대형견이라면 가능

그렇다면 헌혈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만 1~8세 사이, 25kg 이상, 복용 중인 약물이 없는 건강한 대형견이라면 어느 종이든 헌혈에 참여할 수 있다. 단 전염성 질환을 앓은 이력이 없고, 매달 심장 사상충 예방과 외부 구충을 진행하고 있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체중 25kg 이하의 소형견은 헌혈을 할 수 없다.

헌혈견의 몸무게, 혈관 상태, 성격에 따라 일반적으로 320mL 혹은 400mL의 혈액을 채취한다. 헌혈 주기는 1년에 최대 4번, 3개월 주기를 권장한다. 조건에만 맞는다면 횟수에 제한은 없다.

헌혈견을 위한 다양한 혜택도 있다. 헌혈센터에서는 헌혈견에게 기본적으로 헌혈 당일 무료 건강검진을 제공한다. 건국대 부속 동물병원에서 진행하면 센터에서 발급한 헌혈증서 1장당 1회의 수혈 비용이 면제된다. 원칙적으로 헌혈견만 사용할 수 있지만 동거견에 한해 양도가 가능하다. 또한 3회 이상 헌혈했다면 해당 병원 진료 시 진료비를 10% 할인해 준다. 아임도그너 굿즈는 덤이다.

수요일과 금요일 오전 10시에 예약하는 헌혈견에게는 펫 앰뷸런스 이송 서비스도 제공된다. 이동 시간, 이동 스트레스, 응급 이송 등을 고려해 편도 20km 이내에 거주하는 헌혈견만 이용할 수 있다. 부산·울산·경남권에서 헌혈에 참여하고 싶다면 센터를 방문하거나 헌혈 프로그램이 있는 지역 동물병원에서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헌혈이 가능한 병원을 알려주는 기관이 없어 인근 동물병원에 직접 문의해야 한다.

최 책임수의사는 "우리 헌혈 영웅들 덕분에 공혈견들의 희생도 줄이고 수많은 친구들을 살릴 수 있었다"면서 "길에서 만약 헌혈한 반려견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칭찬해 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 "헌혈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아서 망설여진다면 전화로 문의하거나 대형견들이 뛰놀 수 있는 놀이터도 구비되어 있으니 언제든지 방문해달라"고 말했다.


김수빈 부산닷컴 기자 suvel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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