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대학도시서 배운다] “대학 역량·인프라 지역사회 공유, 도시경쟁력 열쇠”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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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대담>
·장제국 동서대 총장
대학 소멸,지역 붕괴로 이어져
대학·지자체 긴밀한 협력 중요
발전 목표 공유·역할 분담해야
정부 규제 완화·권한 이양 기대

·이성권 부산시 경제부시장
도시 발전모델 함께 구축해야
인재 양성·교과 개편 등 혁신을
시설 개방·창업공간 활용 필요
유학생 유도·지역 안착 도와야

〈부산일보〉 기획시리즈 ‘유럽 대학도시에서 배운다’를 통해 유럽의 중소 도시들이 대학을 통한 젊은 인구의 유입, 끊임없는 일자리 창출, 그리고 주민들과의 활발한 소통으로 동반 성장하는 모습을 4차례에 걸쳐 살펴봤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장인 동서대 장제국 총장과 부산시 이성권 경제부시장의 대담을 통해 부산에서 대학과 지자체, 지역주민, 기업이 상호 협력하면서 발전을 견인하는 공동체로 상생할 수 있는 해법을 모색해 본다.


△장제국=유럽과 비교할 때 한국의 대학은 철저히 국가 주도로 운영돼 왔다. 등록금 동결 정책은 대학 재정의 피폐를 초래했고, 이를 보전하기 위해 정부의 재정 지원에 역량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맞지 않는 얽히고 설킨 각종 규제는 대학을 옥죄어 왔다. 지역은 안중에 없고, 규제에 얽매여 상상력이 부족한 지역 대학이 유럽과 같은 대학도시 역할을 한다는 것은 무리다. 그러다 보니 지역사회도 지역 대학에 대해 무관심하고 애정조차 없다. 다행히 현 정부가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대대적인 규제 완화와 재정·권한 이양에 나서 대학가의 기대가 크다.

△이성권=도시 생존의 핵심 전략은 대학과 도시가 오랜 시간 동안 유기적인 협력관계를 지속하며 상호 공존, 발전하는 선순환 모델을 구축하는 데 있다. 유럽 대학도시들과 사정은 다르지만 부산에는 우수한 인프라를 갖춘 22개의 대학이 자리하고 있다. 지역사회 발전과 지역 공동체 형성에 직접적으로 기여하기보다는 인재를 양성하고 학문을 연구하는 독립된 고등교육기관으로서 역할에 충실했다. 대학이 가진 역량과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지역사회와 함께 공유하며 지역사회와 협력적 파트너 관계를 강화하지 않고서는 대학은 물론 도시의 경쟁력이 쇠퇴할 수밖에 없다.

△장=지자체는 젊은이들이 정주하기 좋고, 대학 졸업 후 취업할 수 있는 양질의 기업을 많이 유치·육성하는 것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지역에서 ‘좋은 대학’으로 평가받는 척도는 ‘얼마나 많은 졸업생을 수도권 기업에 취직시켜 부산을 떠나게 했느냐’가 되는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경쟁력을 가지지 못한 지역 대학의 책임도 통감한다.

△이=그래서 부산시는 우리나라 최초로 지자체가 주도하는 ‘지·산·학 합력 정책’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지식·기술·인재의 집합체인 대학이 지역 발전의 ‘앵커’라는 중요성을 인식하고 도시의 발전모델로서 대학과 지역사회의 동반자적 협력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다. 구체적으로는 대학의 연구역량을 지역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 개발이나 시제품 제작, 기술 인증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학생들이 현장실습을 통해 실무능력을 배양하고, 대학의 유휴부지나 시설에 도심형 산업단지를 조성하거나 창업 거점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장 =지방 소멸을 막는 마지막 저수지 역할을 하는 곳이 지역 대학이다. 지역 대학의 소멸은 곧바로 지역 붕괴로 이어진다. 지역의 한 대학이 문을 닫은 전북의 한 도시가 완전히 피폐해졌다는 뉴스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유학생을 유치하고 국제 네트워크를 확충하는 지역 대학들이 많다. 지역의 국제화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우리 대학의 경우, 부산일보사와 공동으로 ‘부산-후쿠오카 포럼’을 17년째 운영하고 있다. 국경을 초월한 ‘광역 경제권 형성’ 담론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정책 제안도 하고 있다. 지방 시대를 맞아 대학이 지역으로 더욱 파고 들어가겠다.

△이=부산에 있는 대학들은 매년 4만 5000여 명의 인재들을 배출하고 있지만 ‘지역에 정주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데에 집중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빠르게 변화하는 지역 내 산업수요 대응에 한계점을 보였다. 앞으로는 지역 공동체의 입장에서 지역 수요에 대응한 인재 양성, 교육과정 개편 등 과감한 혁신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 대학 내부적으로는 학문 간 장벽을 제거하는 유연한 학사구조 개편이 필요하다. 외부적으로는 지역 산업체가 요구하는 커리큘럼을 과감하게 수용하고, 필요할 경우 기업과 적극 협업할 수 있도록 외부와의 담장도 허물어야 한다.

△장=이제 대학과 지자체가 지역 발전의 긴밀한 파트너가 돼야 한다. 부산 발전의 목표를 공유하고 함께 로드맵을 만들어 역할 분담을 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마침 정부가 지자체-대학-기업 간 협력 체계인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를 설계하고 있다. 이 체계는 중앙정부가 지역 대학에게 지원금을 주는 종전의 형식에서 벗어나 지자체와 지역 대학이 함께 그린 청사진을 실현시켜나가는데 필요한 자금을 지방에 투입하는 방식으로 전환된다고 한다. 지역 대학이 지역 발전을 견인하는 주체라는 점에서 획기적인 시도라고 볼 수 있다. RISE 체계를 잘 활용하면 지역 대학 간 역할 분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어 고질적인 중복투자를 막아 재정적으로 어려운 대학 입장에서는 ‘저비용, 고품질’로 체질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부산에는 22개의 대학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지만, 대학은 교수와 학생들이 독점하는 공간이었다. 지역주민들이나 지역 기업들에게 다소 문턱이 높았다. 지역과 대학이 동반성장 생태계를 구축해야 하는 현시점에서는 지역주민과 대학의 관계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일단 물리적 거리감을 좁히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본다. 단순하게는 대학이 보유한 문화·체육시설을 지역주민에게 개방하여 주민이 함께 향유할 수 있도록 하자. 더 나아가 대학의 유휴공간을 청년 창업 공간으로 개방하고, 대학의 연구시설을 기업이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부산일보〉 기획기사에 나온 유럽의 소도시와 대학의 사례에서는 캠퍼스와 도시 사이에 경계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학과 지역이 동일시되는 효과를 가져와 두 주체가 상생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고, 이를 바탕으로 지산학 협력을 했을 때 지역과 대학의 동반성장이 이루어질 수 있다.

△장=인구 감소로 일할 사람이 줄어들고 있어 외국인 이민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나 도시를 잘 이해시키고 정착에 어려움이 없게 하기 위해서는 대학 유학을 통해 지역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외국 유학생들조차 서울 소재 대학을 선호하는 현상이다. 정부는 한국 대학을 졸업한 학생에게 취업비자를 주되 당분간 지방대 출신에게만 그러한 혜택을 줌으로써 지방대에 유학을 올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부산 소재 대학에 유학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스터디 부산’(Study Busan)과 같은 프로젝트를 시와 대학이 함께 운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장학금 혜택이라든가, 부산기업 취업, 정주 기회 알선 등 부산 유학의 혜택을 적극 소개해 유학생들이 부산 지역대학을 선택하도록 하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또 부산을 ‘아시아 창업 밸리’로 만들어 아이디어가 있는 아시아의 우수한 젊은이들이 모여들게 해야 한다. 지역 대학의 연구기능과의 연계 등을 포함한 창업에 필요한 총합적 생태계를 잘 갖추어 자신의 아이디어가 실현되게 한다면 부산은 아시아의 실리콘 밸리가 될 수 있다. 일본 규슈 지역과 연계해 초국경 경제권을 형성해 규모의 경제를 이루어 부산의 지평을 넓히면 타 지역의 젊은 인구 유입도 기대할 수 있다. 부산에 와야 하는 이유를 많이 만들면 부산에 인구가 유입될 것이고 번창하게 될 것이다.

△이=절대적으로 동의한다. 유학생 유치 경쟁이 세계적으로 치열해지고 있다. 다행히 부산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유학생 수는 2020년 1만 483명에서 2023년 1만 1919명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유학생은 등록금과 생활비 등 유학 비용에 대한 부담을 크게 느낀다. 장학금 지원 여부가 유학 지역을 선택하는 핵심 요소이다. 실제로 유학생의 대부분은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은 우수 유학생에 대한 다양한 맞춤형 장학금 정책을 수립해 현지 체류 부담을 완화시키야 할 필요가 있다. 학업을 마친 유학생이 취업 의사가 있더라도 정보 부족과 비자 문제로 지역 정주에 현실적인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특히, 언어 문제 때문에 국내 학생에 비해 정보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지자체는 대학·지역 기업들과 협업하여 유학생의 취업수요를 파악하고 관련 정보를 선제적으로 제공해 취업 후 지역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주할 수 있도록 지원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부산시도 유학생 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언어 문제나 장학금, 인턴십, 멘토링 등에서 도움이 필요한 유학생들이 많이 이용했으면 한다. -끝-

정리=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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