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사적 제재’ 콘텐츠가 주는 경종과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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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법무법인 예주 대표변호사

더글로리, 국민사형투표, 비질란테 등
사적 복수 드라마 콘텐츠에 대중 열광

인권 명분으로 가해자 더 보호하는 탓
사법제도 불신과 부조리에 대한 경종

마녀사냥으로 무고한 피해자 양산 우려
사법 신뢰 회복·중대 범죄 양형 고민해야

2023년은 ‘더 글로리’를 시작으로, ‘모범택시’, ‘국민사형투표’, ‘비질란테’ 등 ‘사적 제재’를 소재로 하는 드라마 콘텐츠가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시청자들은 ‘사적 복수’를 보며 주인공을 응원하고 통쾌함, 카타르시스를 느끼면서도, 드라마보다 더한 현실에 씁쓸한 여운을 삼켰다.

얼마 전 고등학교 남학생이 여중생을 성폭행한 사건의 피해자 측 변호 사건을 맡았다. 그 가해 남학생은 별건 성폭행으로 조사를 받던 중에 또다시 범행을 저질렀다. 피해 학생 부모는 사건 이후에도 버젓이 길거리를 활보하는 가해자 때문에 집 밖에 나가지 못하는 딸을 보고 분개했다. 나는 ‘가해자를 때려죽이고 싶다’는 피해자 아버지를 달랬고, 그 가족은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면서 가해자의 구속을 기다렸다. DNA검사 끝에 영장이 청구되었지만 결국 영장은 발부되지 않았다. 미성년자라는 이유에서였다. 죽이고 싶다는 피해 학생 아버지에게 나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첫 사건에서 제대로 조사해서 처벌했다면, 그놈에게 우리 딸이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 저놈이 나가서 또 그러지 말라는 법이 있냐’고 울부짖었다.

사람들이 사적 제재 드라마에 열광하는 것은, 형사사법 시스템 전반에 대한 불신, 일반 상식과 법의 괴리에서 비롯된다. 인권 보호라는 명분으로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더 보호하고, ‘법꾸라지’로 교묘히 법망을 빠져나가며, 극악무도한 죄를 짓고도 버젓이 활개를 치고 다니는 자들을 보고 사람들은 분개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적 제재는 그 어떤 이유에서도 정의가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법치국가에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범죄행위이다.

피해 아동에게 영구적 장애를 안기고도 심신미약으로 감경을 받은 조두순의 출소 당시 현장 모습은 이를 잘 보여준다. 사적 복수를 가하겠다는 유튜버들과 수많은 시민이 모였지만, 이들 중 8명이 고성방가, 건물 침입, 폭력 행사, 경찰 업무 방해 등으로 입건되고, 또 다른 피해가 양산됐다. 최근 대전의 한 초등학교 교사를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한 학부모에 대한 신상정보가 일부 네티즌에 의해 공개되었는데, 네티즌들의 무차별적인 공격으로 가해 학부모가 운영한 김밥집의 다른 가맹점주 등 무고한 피해자들이 속출했다.

이처럼 사적 제재는 피해자를 비롯하여 복수를 가한 자들을 가해자로 만든다. 범죄 가해자에 대한 사적 복수를 정의라고 표방한 피해자는 가해자와 똑같은 범법자가 되는 것이다. 오판의 위험도 있다. 공적인 사법체계에서도 뒤늦게 실체적 진실이 발견되어 재심으로 무죄가 선고되는 일이 있는데, 사적 제재는 검증 시스템의 부재로 바로 잡을 기회조차도 없다. 또한 마녀사냥식의 무분별한 공격으로 무고한 피해자들을 양산하는 등 사적 제재는 법치주의 근간을 훼손하여 사회에 악영향을 남긴다.

사법부와 공권력은 왜 이토록 국민이 사적 제재 콘텐츠에 열광하는지, 귀 기울여야 한다. 사법제도의 공정성과 투명성, 사법부에 대한 신뢰 회복, 국민의 법 감정과 판결의 현실적 괴리 극복 등 국민에게 사법체계 내에서 응당한 처벌과 보호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어야 한다. 얼마 전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뒤따라가 원룸에 침입하여, 성폭행을 시도하고 이를 제지하는 피해자의 남자친구까지 살해하려 한 20대에게 법원은 이례적으로 검찰이 구형한 형량보다 무려 20년이나 늘어난 징역 50년을 선고했다. 이례적인 판결이지만, 댓글에 왜 ‘통쾌하다’는 반응을 보이는지, 중대 범죄의 양형에 대한 고민도 이루어져야 한다.

최근 국회는 범죄 피의자 신상 정보 공개 범위를 확대하는 ‘머그샷 공개법’을 통과시켰다. 머그샷 공개법은 신상공개 대상에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내란·외환, 범죄단체조직, 폭발물, 현주건조물방화, 마약 범죄 등을 추가하고 중대 범죄자 신상공개 결정 30일 이내 수사기관이 촬영한 머그샷을 공개한다는 내용이다. 흉악범죄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중대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에 대한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제도를 실효성 있게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을 반영한 결과다. 피의자 신상공개에서 언론의 역할을 고민하고, 세밀한 대통령령 마련으로 사회에 미칠 부작용에 대해서도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사적 제재를 주제로 한 콘텐츠는 모방범죄를 야기할 수 있기에 사적 복수를 지나치게 합리화시키는 메시지로 끝나서는 결코 안 된다. ‘국민사형투표’ 드라마의 마지막 회에는 “무죄의 악마들로 인해 상처받은 모든 분들께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라는 자막이 올랐다. 결코 정의가 될 수는 없지만, 법조 비리, 사법농단 사태 등 사법제도의 불신과 부조리에 대한 경종과 그 미흡한 사법 시스템에서 상처받은 자들에 대한 위로의 메시지가 바로 사적 제재 콘텐츠의 방향성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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