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파란 명찰'을 달게 됐을까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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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마약 변호사를 하는가/ 안준형

마약사범 셋 중 하나 10~20대
사회경험 부족할수록 쉽게 중독
수요 줄지 않으면 마약 근절 안 돼
처벌보다 치료·관리 우선해야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뽕쟁이’ 해롱이는 마약을 끊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다 금단 증상으로 쓰러지기까지 한다. tvN 화면 캡처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뽕쟁이’ 해롱이는 마약을 끊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다 금단 증상으로 쓰러지기까지 한다. tvN 화면 캡처


마약 관련 기사는 오늘도 쉬지 않고 실린다. 올해 적발된 마약사범이 2만 명이 넘어 역대 최다이고, 셋 중 하나가 10∼20대라는 충격적인 내용이다. 마약범죄 특별수사본부는 "온라인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젊은 층의 마약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이처럼 올해 마약사범 수가 급증한 것은 특수본 산하 각 수사기관이 마약범죄에 대해 엄정 대응한 결과"라고 말했다. 밀수, 밀매, 밀조 등 공급 사범에 대한 단속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 자평했다.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뒤 열심히 뛰고 있으니 이제 마음을 놓아도 괜찮을까.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마약상을 많이 잡아넣을수록 독과점 시장이 형성되어 마약 판매 단가는 올라간다. 마약 가격 상승은 고위험조차 무릅쓰고 마약을 대량 반입할 유인이 된다. 수요 자체를 줄게 만들지 않으면 결코 마약 범죄를 근절시킬 수 없다는 이야기다.

<나는 왜 마약 변호사를 하는가>의 저자 안준형 씨는 마약 전문 변호사로 일 년에 100건가량의 마약 사건을 처리한다. 그가 뉴스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실제 담당한 사건 사례로부터 얻어 생생한 것들이다. 사람들은 사실 마약을 잘 모른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 필로폰을 투약하는 것일까. 마약사범은 구치소 내에서 다는 명찰 색깔도 다르다. 일반 수용자는 흰색, 마약사범은 파란 명찰을 붙인다. 일반 수용자가 오염되지 않도록 분리 수용하는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파란 명찰은 대부분 30~40대 남성이었다. 요즘은 젊은이들이 더 많고, 여성 수감자도 상당히 늘었다. 문제는 젊을수록 마약에 중독되기가 쉽다는 점이다. 안정된 직업이 없고, 사회 경험이 부족할수록, 주변에 책임져야 할 사람이 적을수록 중독에 빠지기 쉬운 법이다.

한 달의 수감생활로 직장, 연인, 사회적 평판까지 모두 잃은 H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독하게 마음먹고 필로폰이 생각날 때마다 구치소에서 쓴 일기를 꺼내 읽었다. 문득 찾아오는 갈망을 이기기 위해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치열하게 일하고, 주말이면 하루 열다섯 시간을 산행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이제 필로폰 생각이 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나온 대답이 이렇다. "그냥 바쁘게 살고, 평생 참는 거죠." 마약의 끝은 정해져 있다. 몸이 망가지니 신체적 자살이고, 아직 거기에는 이르지 않았다면 사회적 자살 중이다. 저자는 "사실은 당신들도 살고 싶을 것이라는 마음에 공감한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변호한다"고 고백한다.

최근 경찰청과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는 마약 범죄 예방 릴레이 캠페인을 진행하며 'NO EXIT, 출구 없는 미로'를 구호로 채택했다. 출구가 없다면, 한 번이라도 마약을 투약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2024년 마약 중독자 치료 예산은 보건복지부 요청에 비해 85%나 삭감됐다. 정부는 투약자의 치료와 사회 복귀보다는 단속과 처벌에 치중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마약과의 전쟁은 장기전이다. 저자는 한국이 마약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지금부터라도 마약 범죄와 마약 사범을 대하는 전략을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급 측면의 단속보다 수요를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마약에 대한 수요를 줄이려면 중독자를 격리하고 처벌하기보다는 치료와 관리를 우선해야 한다. 지극히 당연한 주장이 아닌가. 우리나라 마약 투약 사범들의 재범률은 매우 높은 편이라니 약쟁이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저자가 구치소에서 갓 스물이 넘은 앳된 초범 의뢰인을 만나고 돌아오며, 자신의 스물이 마냥 천진할 수 있었던 건 온전히 자신의 덕이었을까 자문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당신의 가족이 마약에 다시 손을 댈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라. 마약은 한 번에 끊을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라. 그들을 끝까지 지지하고 단약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라." 중독 치료 전문의들은 가족에게 감시자가 아닌 관찰자, 조력자가 되라고 조언한다. 안준형/세이코리아/280쪽/1만 8800원.


'나는 왜 마약 변호사를 하는가' 표지. 세이코리아 제공 '나는 왜 마약 변호사를 하는가' 표지. 세이코리아 제공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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