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향 최수열 감독 “새로운 홀, 악단에게 훌륭한 악기”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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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재임하고 14일 고별무대
부산콘서트홀 활용 방안 제안

‘세금’ 운영 시립 오케스트라
구군 문화회관 공연 연계하고
관현악 연주 봉사 기회 늘려야

최수열 부산시향 예술감독. ⓒ심규태. 부산시향 제공 최수열 부산시향 예술감독. ⓒ심규태. 부산시향 제공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의 시 ‘낙화’에 나오는 첫 대목이다. 6년간의 동행을 마무리하고 이달 말로 임기를 만료하는 최수열(44) 부산시립교향악단 제11대 예술감독(2017년 9월~2023년 12월)을 만나고 돌아 나오면서 떠올린 시 구절이다. 지난 5일 부산시향 예술감독실에서 그와 나눈 2시간 남짓의 대화 중에는 “지휘자로서 청춘을 바친” 소회 못지않게 시립예술단의 앞날을 걱정하는 마음도 엿볼 수 있었다. 떠나는 마당이기에 어쩌면 더 부담 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고 던진 질문이 많았다. 최 예술감독은 오는 14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릴 부산시향 제606회 정기 연주회 ‘영웅의 생애’를 끝으로 부산을 떠난다.


-오는 14일이면 마지막이다. 시원섭섭하다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될 것 같다. 개인적인 변화를 꼽는다면.

▲맷집이 생긴 것 같다. 초반 2년 정도는 아주 힘들었다. 음악 아닌 것에 적응하느라고. 음악만 생각하는 감독은 사치일 수 있겠지만 말이다. 서울시향 부지휘자 이후 처음으로 책임지는 감독 역할의 악단이어서 더 그랬을 것이다. 지휘자 동료라도 있으면 좋았겠지만, 인천시향(이병욱)이나 광주시향(홍석원) 정도인데, 광역시 감독 중에서는 맨 먼저여서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부임 당시 악장과 부지휘자는 공석이었다. 처음엔 이것저것 해 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구조와 맞닥뜨리니까 안 되는 것도 많았다. 시향 단원 충원은 감사하게 생각한다. 올해까지 27명 정도 새로 뽑았다. 그만큼 은퇴자가 많았다. 40~50대가 많지만, 이제는 고령이 아니다. 적어도 내가 시작한 거보다는 조금은 나은 환경에서 시작할 수 있겠구나 싶어 다음에 오는 지휘자가 부럽기도 하다(웃음).


-예술감독 취임 후 부산시향 창단 60주년(2022년), 600회 정기 연주회(2023년) 등 의미 있는 변곡점이 몇 있었다. 교향악단 지향점을 이야기하면서 ‘넘버원’보다는 ‘온리원’을 꼽았는데 어떤 의미인가.

▲악단의 연주력도 중요하지만, 개성을 강조한 의미다. 악단 선호도 설문조사에선 순위가 있겠지만, 음악 예술이라는 게 순위를 따질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는가. 예를 들어 베를린필이 잘하지만 1등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베를린필의 일하는 방식이거나 베를린필의 음악 색깔은 다를 수 있다. 지휘자는 악단에 특별한 작곡가의 옷을 입히는 역할이다. ‘슈트라우스’ 옷도 입어 보고, ‘라벨’ 옷도 입어 보고.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특징적인 색깔, 개성이 있으면 좋겠다. 어떤 지휘자가 오더라도 부산시향만이 가진 개성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하긴 어려운데 부산은 좀 센 편이다. 직설적이긴 한데 광주의 그것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 광주시향이 연주하는 쇼스타코비치는 한이 서려 있다. 브람스를 하더라도 부산시향은 진중하고 아카데믹한 것보다는 낭만적인 것이 어울린다. 라흐마니노프 같은 대중적인 레퍼토리를 소화하면서도 뭔가 확 올라올 때가 있는데 때론 과감한 면도 있다. 부산은 개방적이고, 재미난 게 많고, 자부심 넘치는 도시라고 생각한다.


-연간 시즌 프로그램 도입을 처음 시도했다. 그 외에 재임 기간 중 꼭 하고 싶었는데 못한 거라든지 아쉬움이 남는 부분도 있을 텐데.

▲부산시향에 와서 한 일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시즌제 정착인데, 그건 칭찬받을 일이 아니라 당연한 거다. 60년 가까이 된 오케스트라가 한 번도 시도 안 했다는 게 더 이상했다. 다만, 부산시향이 상주하는 부산문화회관뿐 아니라 구·군 문화회관 등 부산 전역의 공연장에서 함께 시행한다면 시너지가 날 텐데 아직까진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시향이 시민의 귀한 세금으로 운영되는 단체인 만큼, 구·군 문화회관과 연계해 공연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부산문화회관 공연 하루 전 같은 레퍼토리로 금정·강서·북구·동래·영도·을숙도·해운대 문화회관을 순번제로 도는 방법도 있겠다. 서울시향 재직 시절 부지휘자로서 25개 자치구를 부지런히 돌아다닌 경험이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시와 기초지자체의 전폭적인 지원(공연 예산과 일정을 사전에 부산시향과 조율)이 필요할 것이고, 악단도 실내악이 아닌 오케스트라 연주로 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공연 단체가 수준을 높이려면 연주 횟수가 많아져야 한다. 그건 또 예산과 직결된다. 시향이 비교적 모객률이 높은 편이지만, 시 입장에선 예술단이 7개나 있으니까 교향악단에만 몰아줄 수는 없을 것이다. 실내악 말고 오케스트라가 이동하려면 그게 다 예산이다. 야외 연주회만 하더라도 그렇게 원했건만 한 번도 못 하다가 지난 6월 ‘클래식 파크 콘서트’에서 겨우 실현할 수 있었다. 부산시민공원에서 시민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슬프더라. 이걸 하려고 6년이나 걸렸나 싶었다. 사람들이 많이 오해하는 것 중에 하나도 부산시향은 초청해도 안 온다는 건데, 그건 그렇지 않다. 이미 짜놓은 연간 일정에서 뒤늦게 이야기하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시향이 거절한 대부분이 이미 확정된 우리 공연 일정 전후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리미리 다 같이 일정을 짜자는 거다. 구·군 문화회관에서도 적극적으로 유치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새로운 예술감독 후임은 정해지지 않았다. 시립예술단 운영을 맡고 있는 (재)부산문화회관이나 시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없나.

▲임기를 연말로 줄이긴 했지만(당초 내년 9월까지였지만 시즌제 정착 등을 위해 올해 연말로 앞당겨 계약을 종료하기로 합의했다), 아직 다음 감독이 발표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떠나는 입장에서 매우 조심스럽다. 제 임기를 연말로 마무리하고, 바로 다른 감독이 연초에 부임하는 것이 이상적이나 그나마 최소한의 공백을 기대하면서 축소한 임기에 대한 위안으로 삼으려 한다. 다만, 한 가지 덧붙인다면 부산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부산시립공연장(부산오페라하우스와 부산콘서트홀)이 지어지는 만큼 시립의 대표악단이 이 전용홀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향 또한 이제는 신경 써야 할 때라는 점이다. 단순히 시향이 그곳에 상주한다 안 한다의 개념이 아닌, 조금 더 이상적이고 효율적인 방향 제시를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새로운 홀은 그 자체로 악단에게는 훌륭한 악기이고,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특히 교향악단한테는 부산콘서트홀 사용 여부가 중요하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콘서트홀에 교향악단이 들어갈 공간이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악보실, 악기 보관실, 체임버 연습실 등등. 당장 준공이 시급하고, 설계 변경도 안 된다고 하니 어떤 식으로든 활용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비근한 예로 핀란드 ‘헬싱키 뮤직센터’는 시벨리우스 아카데미와 두 개의 오케스트라인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핀란드 방송 교향악단이 격주로 1주일씩 사용한다. 나머지 2주는 대관을 한다. 상주를 하지 않는 대신 홀을 1주일씩 사용하게 되면 홀 자체를 연습실로 쓰는 방안이 나올 수도 있다. 뉴욕필도 그렇고 연습실이 아닌 홀에서 연습하면 훨씬 편하다. 모든 조건을 거기에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606회 고별 연주회 프로그래밍에 관한 질문이다. 혹시 본인을 ‘영웅’이라고 상정한 건 아니겠지만, 슈트라우스와 패르트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몇몇 지인도 놀리긴 했다. 마지막 음악회니까 자전적인 의미로 고른 게 아니냐는(웃음). 물론 아니다. 6년 3개월 전 부산시향에서 처음 일을 시작할 때 R. 슈트라우스의 교향시(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로 문을 열었다. 그동안 슈트라우스 전곡을 완주했다. 이번에 연주할 슈트라우스 곡(영웅의 생애)은 대상도 명확하다. 슈트라우스. 이 곡은 바이올린 솔로가 굉장히 중요하다. 악장이 솔로 주자 역할을 하는 작품을 통해 오케스트라 자체에 집중하고 싶어서 협주곡 없는 프로그래밍을 했다. 아르보 패르트의 ‘벤저민 브리튼을 기리는 칸투스’는 처음과 끝을 상징하는 요소가 있는 곡이다. 패르트는 브리튼 덕후였다. 그동안 부산시향과 함께한 작곡가 중에서는 대표적인 슈트라우스와 라벨을 골랐다. 이들 곡으로 통영국제음악제도 가고, 서울 교향악축제도 하러 갔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협연한 부산시립교향악단 제573회 정기 연주회 모습. 부산시향 제공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협연한 부산시립교향악단 제573회 정기 연주회 모습. 부산시향 제공

-6년간 함께한 공연 중에 기억에 남는 최고의 연주(곡)나 협연자, 장면이 있을까.

▲지난 2021년 4월 협연자 임윤찬이 생각날 수밖에 없다. 피아노를 정말 잘 치는 애가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윤이상콩쿠르 우승(2019년·15세) 영상을 찾아보게 됐는데 놀라웠다. 당시엔 소속사나 매니저도 없어서 어머니한테 직접 연락했다. 이례적으로 부산시향 정기 연주회에 부르겠다고 하고, 우승 당시 연주곡인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요청했는데,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치겠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어린 연주자여서 레퍼토리가 별로 없다고 생각해서 “우리 오케스트라가 너의 실험 대상은 아니다. 검증된 곡을 할 수밖에 없다”고 답했는데 나중에 임윤찬 스승인 손민수 선생이 연락 와서 자기도 KBS교향악단과 라흐마니노프 3번을 협연할 계획이 있는데 6개월 정도 여유가 있으니 같이 준비해 보겠다면서 믿고 해 보면 어떻겠냐고 설득해서 결국 승낙했다. 그리고 시민회관에서 첫 리허설을 했는데 그때 다들 눈치를 챘다. ‘이 친구, 정말 보통이 아니구나’ 하고. 그때 농담처럼 “다음에 우리가 (임윤찬을) 못 볼 수도 있으니, 이번에 잘 보세요”라고 했다. 그 뒤 임윤찬은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그 곡으로 우승했다.

그다음 생각나는 사람은 양인모 씨다. 부산시향 올해의 예술가(2022년)로 위촉한 뒤 세 번의 연주회 중의 하나는 두 사람이 협의해 곡을 정하고, 하나는 인모 씨가 하고 싶은 곡으로, 다른 하나는 내가 하고 싶은 곡으로 하기로 합의했다. 그때만 해도 콩쿠르 계획이 없었던 걸로 알고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지난해 5월 부산시향 정기 연주회 때 협연한 곡으로 같은 달 열린 제12회 시벨리우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했다. 시벨리우스를 제안한 것도 저지만, 처음이자 마지막 연주를 한 것도 부산시향이었다.

피아니스트 손민수도 부산시향 올해의 예술가(2023년)로 위촉했지만, 임윤찬의 스승으로 뜨기 한참 전 인천시향 협연 때 만났다. 그때 놀라웠던 건 손 선생이 오케스트라 연습 첫날부터 오겠다고 해서다. 통상 협연자들은 미리 올 필요가 없는데, 꿔다 놓은 보릿자루같이 있겠다면서 나흘인가를 매일 출근하다시피했다. 그때 생각했다. ‘이 사람하고 일하면 뭐라도 되겠구나.’ 성실함이 거의 도인 같았다. 때마침 제 임기가 2023년까지 보장돼 있어서 2021년 가을에 2023년 가을에 이루어진 브람스 연주를 확정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은.

▲부산시향에 오면서 주민등록도 옮겼다. 아이가 유치원 시절을 부산에서 보내서 행복했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서울로 옮겨 갔다. 지난 6년 동안 즐겁고 고마운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모두가 박수를 쳐 줄 때 기분 좋게 떠날 수 있어서 감사하다. 어쨌든 오케스트라는 계속 유지되는 거고, 지휘자는 왔다가 가는 존재이지만, 소리 소문 없이 가는 건 싫었다. 마지막 연주회도 정기 연주회이고, 협연자가 없는 게 특별하지만 결국은 오케스트라가 남는 거라는 걸 알리고 싶었다. 오케스트라의 주인은 오케스트라이고, 지휘자는 세입자일 뿐이다. 집을 살 수 없다. 자기가 돈을 들여서 오케스트라를 구성할 수 없는 이상은 리모델링 정도 가능한 수준이다. 얼마 전 마지막 휴가로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다녀왔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성당)가 지금도 짓고 있는 것처럼 오케스트라 역시 완공 시기는 없는 것 같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설계한 가우디가 죽고 나서 다른 건축가가 맡으면서 엄청난 반발도 있었지만, 누군가는 고치고 입히고 해야 하는 오케스트라라는 생각이 오버랩됐다. 부산시향이 60년을 지냈지만, 세계적으로 오래된 레벨은 아니다. 일본만 하더라도 100년 된 오케스트라가 있고, 우리 오케스트라가 시행착오를 겪는 건 과도기이며 당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부산 시민도 부산시향을 꾸준히 지지해 주고, 이 악단을 통해 삶의 활력과 치유를 얻어가면 좋겠다.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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