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흑인 혼혈 야구 선수…차별·설움, 운동으로 극복”

변현철 기자 byunh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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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대 72학번·4번 타자 김영도 씨
인생 역경 다큐 ‘베이스볼 하모니’
미국기독교영화제에서 다수 수상
스타 포기 뒤 체육 교사·감독 삶 담아















김영도 씨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베이스볼 하모니’ 포스터 사진. 김영도 씨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베이스볼 하모니’ 포스터 사진.



김 씨가 활동한 1972년 동아대 야구부 모습. 김 씨가 활동한 1972년 동아대 야구부 모습.

 동아대학교 72학번 동문이자 야구부 4번 타자였던 김영도 씨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베이스볼 하모니’가 국제영화제에서 다수 수상하는 등 화제가 되고 있다.

 ‘베이스볼 하모니’(감독 곽주일·미국명 Amy Hutchinson)는 한국 최초의 흑인 혼혈 야구 선수이자 체육 교사, 야구 감독이었던 김영도 씨의 인생 역경을 다룬 작품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미국기독교영화제에서 베스트 다큐, 베스트 감독, 베스트 작가, 베스트 음악·편집상을 휩쓸었다. 140년 전통의 레인칼리지에서 주최한 ‘Award ceremony at Lane doc festival’에서도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았다. 세계 최고 독립영화제인 선댄스영화제 출품작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김 씨가 스스로 고아원에 걸어들어 간 사연, 어머니 묘소 방문, 야구 선수 시절 친구들, 교사로 재직했던 대신중학교, 35년 만에 다시 잡아 본 야구 감독용 노크 배트, 이제는 인종차별 발언을 너털웃음으로 웃어넘길 수 있게 된 그의 모습 등을 담았다. 베이스볼 하모니는 오는 10일 미국 캘리포니아 샌타클라리타 시티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1950년 한국인 어머니와 미군 사이에서 태어난 김 씨는 한국전쟁 중 태어난 흑인 혼혈인이 그랬듯 차별과 설움을 겪으며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가 9살 때 고아원에 스스로 들어갔다고 한다. 6학년 때부터 야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그의 인생은 바뀌었다. 야구를 시작하자마자 그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 동대문중학교 야구부에 뽑혔고 동대문상고에 진학해서도 1루수이자 4번 타자로 활약했다.

 김 씨는 “1968년 동아대 야구 장학생으로 입학했는데, 당시 유일한 지방 팀이었던 동아대를 지휘한 분은, 부산의 대표적 야구인이었던 고 안영필 감독이었다. 안 감독님이 나를 야구부에 영입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동아대 시절 그는 3· 4번 타자와 1루수를 맡으며 ‘그라운드의 와일드 가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김 씨는 “중심 타선에서 활약했으며 신체 조건도 뛰어났지만, ‘흑인 혼혈’이라는 차별이 한국 야구의 주류 선수로 활약하는 데 걸림돌이 됐다”면서 “결국 스타 선수의 꿈을 접고 후학을 가르치고 싶은 생각에 동아대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과정을 마쳤다”고 설명했다.

 그는 1980년 부산 대신중학교에서 체육 교사이자 야구 감독으로 활동했다. 당시에도 국내 최초의 흑인 혼혈 체육 교사이자 야구 감독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김 씨는 결혼 후 두 자녀를 두었는데 자식과 혼혈인들을 위해 경상도 지역 혼혈인협회 회장을 10여 년 맡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열심히 살아왔지만 인종차별은 나와 가족을 계속 힘들게 했다. 결국 내 인생의 가장 큰 목표이자 전부였던 야구도 그만두고 37세가 되던 해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미국 이민의 길에 올랐다”고 밝혔다.

 미국 이민 후 야구를 기억에서 잊고 아버지로서 삶을 살았던 김 씨는 다큐멘터리 ‘베이스볼 하모니’에서 비로소 야구 이야기를 하면서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고 한다. 다큐멘터리 제작진과 김 씨는 지난해 동아대를 방문, 캠퍼스와 야구부 훈련장 등을 둘러보며 소중했던 추억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변현철 기자 byunh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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