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뛰는 동물권 변호사의 기록…“죽여도 되는 생명은 없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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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생존권 다룬 책
사회적 약자에도 눈길
‘죽여도 되는 존재’ 벗어나야

김도희, 정상동물. 은행나무출판사 제공 김도희, 정상동물. 은행나무출판사 제공

지난 3월 서울 도심 한복판을 달리던 얼룩말 ‘세로’가 경찰에 검거되는 웃지 못할 사건이 있었다. 서울대공원 내 사육장에 살던 네 살배기 수컷 세로가 자유를 찾아 나섰다가 인간에게 제지당한 것이다. 호기심이 가득한 어린아이처럼 주택가 곳곳을 누비던 세로와 배달용 오토바이를 탄 사람이 함께 찍힌 사진이 당시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기도 했다.

동물원에 갇혀 살다 바깥 구경에 나선 동물은 세로만이 아니다. 2018년에는 대전의 한 동물원에 살던 퓨마 ‘뽀롱이’가 사육장에서 탈출했고 지난 8월에는 대구의 한 동물원에서 침팬지 2마리가 동물원 밖으로 도주했다. 구조 당국이 출동해 동물을 발견했지만 수습 과정에서 뽀롱이와 침팬지 한 마리가 숨지면서 이들은 자유의 대가를 목숨으로 치르게 됐다.

동물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질 때마다 동물원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문제의식은 결국 시설개선, 행정처분 등의 개선책에 가로막힌다. 문제가 있는 것은 맞지만 전부 뜯어고칠 수 없다는 게 주된 이유다. 개선책이 나오면서 사건은 일단락되고 문제는 또 다른 문제로 덮인다.

<정상동물>은 이러한 현실을 꼬집는 책이다. ‘동물은 왜 죽어도 되는 존재가 되었나’는 부제가 말해주듯 인간이 동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짚어본다. 저자가 동물권 변호사로 활동하며 느낀 경험과 동물권 운동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고스란히 담겼다.

책은 먼저 동물권 운동이 시작되게 된 이론적 기반을 설명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동물권을 윤리적·사회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동물권 담론이 만들어지게 된 역사와 각 이론이 가진 장단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동물권 개념을 올바르게 정의하고 우리 사회에 맞는 동물권 운동 방향을 정하기 위해 다양한 이론을 소개했다.

저자는 ‘정상동물 이데올로기 시대’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고통을 느끼는 동물에 대해서만 동물권이 작동하는 현실을 비판한다. 고통을 느껴야만 동물권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동물권의 대상을 최소화하기 위한 인간의 이기심이라는 지적이다. 고통만 제거한다면 자유롭게 음식, 도구가 될 수 있는 동물의 현실을 고발했다.

저자의 시각은 단순히 동물을 옹호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군견, 마약탐지견 등 국가를 위해 봉사 중인 개와 드라마, 영화 촬영에 활용되는 말 등 동물의 노동을 인간이 착취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해 봐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날카롭다. 동물원 폐쇄 운동과 함께 장애인들의 탈시설 운동을 응원하는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도 느껴진다.

책은 인권 개념이 탄생했을 무렵, 유색인종·여성·아동이 인권을 갖지 못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동물에게도 기본권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근 바다거북과 같은 ‘특정 종’과 강과 같은 ‘특정 지역’에 대해 권리능력을 인정하는 판례가 나오고, 국내에서도 제주 남방큰돌고래와 같이 생태적 가치가 큰 자연을 생태법인으로 지정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하자는 논의가 활발하다는 설명이다. ‘죽이지 말자’가 아니라 ‘죽여도 되는 존재로 만들지 말자’는 저자의 말은 담백하지만 절절하다. 김도희/은행나무/312쪽/1만 8000원.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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