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 365] 저신뢰 사회 이대로 좋은가
이근우 부경대 사학과 교수
최근 우리 사회 사기 범죄 사건 급증
OECD 국가 중 발생 건수 가장 많아
반면 처벌은 피해자 고통에 못 미쳐
조선 시대에 비해서도 너무 무관심
법리보다는 중대 범죄 인식 중요
그래야 국민 상호 신뢰 저하 막아
유럽에 로마법이 있었다면, 동아시아에는 율령법이 있었다. 중국 춘추전국 시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당대에 완성된 율령격식이라는 정교한 구조의 법 체계로 완성됐다. 간단히 말하면 율은 주로 이런 짓을 하면 이렇게 처벌한다는 내용이고, 영은 이렇게 하라는 내용이다. 〈대명률〉에 따르면 강도질을 했지만 재물을 얻지 못하면 장 100대에 유배 3000리, 재물을 얻었다면 주·종범을 가리지 않고 모두 참형이었다. 〈대명률〉은 바로 조선이 준용해서 썼던 명나라의 율이다. 조선이 시행한 형벌을 거론한 이유는 최근 우리 사회에 횡행하는 사기 범죄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사기 사건 건수를 살펴보면, 2017년 23만여 건, 2020년 34만여 건, 작년 32만여 건이다. 2017년부터 급증해 현재는 30만 건 전후로 발생하고 있다. 얼마 전 국토부 장관이 OECD 국가 중 우리가 사기 피해 건수가 가장 많다고 했을 정도니 그 심각성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10만 명당 발생 건수는 2020년 기준, 우리나라가 683건, 스웨덴이 2690건, 독일이 969건, 일본이 24건이다. 나라별 단순 비교는 불가능하다 해도, 일본은 사기 건수가 극단적으로 적다. 그 이유는 개인의 고소·고발을 사법기관이 무조건 접수하지 않고, 당사자 간 조정이나 민사 사건으로 해결하는 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그 차이는 극명하다. 실제로 현재 우리 사회가 서로 신뢰하지 못하는 저신뢰 사회임은 분명하다. 계약을 할 땐 혹시 사기를 당하는 게 아닌가 걱정해야 하고, 해외에서 “320만 원이 정상적으로 결제되었습니다”라며 뜬금없이 날아오는 문자에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물론 사기 범죄에는 우리의 조급함이나 방심도 한몫하고 있다. 최근 부산 해운대에서 유명한 증권사를 통해 사모펀드에 투자하면 월 3%, 혹은 연 9.8%, 최고 연 14%의 이자를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폰지사기 사건이 발생했다. 총 사기 금액만 15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 차용증 한 장만 달랑 쓰고 많은 돈을 투자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만큼 사기 수법이 교묘했다는 말이다.
더욱이 여러 사람이 가담해 조직적으로 사기극을 벌이면 더 상황이 나빠진다. 다수가 공모해 분위기를 잡고 거짓말을 하면,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고 확인해도 사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문제는 사기죄가 성립하더라도 그 처벌이 10년 이하의 징역,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그친다는 점이다. 10억 원 정도 사기 치고, 10년 감옥 살고 나오면 남는 장사라는 소리도 나올 법하다. 전세 사기는 단순한 사기라고 볼 수 없으므로, 보이스피싱 사기와 같이 범죄단체 조직죄로 처벌할 필요가 있다. 주변 시세를 잘 알고 있을 부동산 중개업자가 집값보다 비싼 전세금으로 계약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범죄행위 가담을 넘어서 범죄단체의 일원이 되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일반인이 전세계약 때 부동산 중개업자를 의심할 수 있을까.
다시 조선 시대의 법률로 돌아가 보자. “남의 물건을 자기 물건이라 하거나, 다른 사람의 돈이나 물건을 모략을 써서 취하려 하거나, 다른 사람의 돈이나 물건을 받아서 제멋대로 쓰면, 장물 액수를 계산해 절도의 예에 준하여 논한다.” 즉 사기 금액에 따라서 현재의 약 70만 원(당시 화폐 단위로 1관) 이상이면 장 60대, 350만 원 이상은 장 60대에 노역형 1년, 700만 원 이상은 장 100대에 유배 2000리였다. 세 번 절도는 교수형이었다. 무고죄는 처벌이 더 무겁다. “다른 사람이 태형의 죄를 지었다고 거짓 고발하면 그 무고한 죄에 2등급을 더한다. 장형·도형·유배형을 무고하면 3등급을 더하되, 장 100대를 한도로 하고 3000리에 유배 보낸다.” 무고를 하면 무고한 죄보다 두세 단계 더 엄중하게 처벌한 것이다.
현재의 법은 수사와 논리가 현란하긴 하지만, 정작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은 물론이고 사기 범죄가 우리 사회 전반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는 너무 무관심한 것이 아닐까. 법을 정교하게 만든 게 아니라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거나, 워낙 복잡하게 엮어 놓아서 법을 만든 목적을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벌금 최고액이 사기 피해 금액과 상관없이 2000만 원이라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법은 단순 명료해야 하는데, 사기는 절도와 다르다는 법리만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닌 듯하다. 사기나 무고, 고소·고발이 난무하는 사회에 밝은 미래가 있기는 하겠는가.
조선 시대의 강·절도는 국가적으로 대사면을 할 때도 그 대상에서 제외됐다. 사실 사기는 절도보다 더 나쁜 범죄다.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 오랜 시간에 걸쳐서 사람을 속여서 재물을 훔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기 범죄를 줄이는 것이야말로 저신뢰 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첫 발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