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꼰대 체크리스트
‘꼰대’가 화두다. 꼰대의 필수조건은 ‘듣기 기능’ 마비다. 꼰대는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유통기한’이 한참이나 지난 사고방식을 고집하고,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사람을 조롱하는 말이다. 꼰대들은 ‘강한 인정 욕구와 아집, 권위적인 자세, 떨어지는 공감 능력, 경직된 사고, 소통 불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한다.
폭탄주 등 구태의연한 조직 문화로 1~2등을 오르내리는 언론계에서 30년간 일한 기자도 한때 젊고 개혁적인 성향을 자부했던 순간이 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나이 오십을 넘어가면서 후배들에게 “출근해 경찰서 취재하고, 본인 결혼식 가던…” “1년에 사흘 휴가…” 등등 “라떼는…”을 남발하는 대화에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더 무서운 건, 쥐꼬리만한 성취에 들떠 필요도 없는 훈수를 여기저기 두는 모습이다.
그런 꼰대질은 역시 정치권이 최고인 듯하다. 상대방 생각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일방적인 매도와 돌 던지기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소통과 공감 능력 실종, 경직된 사고 등 꼰대의 조건을 모두 갖춘 모양새다. 여당은 내년 총선에서 ‘희생 없는 기득권 정치’만 고수하면서, 자칫 ‘영남당 전락’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꼰대 정치 극복’을 외쳐 정치의 정점에 섰던 야당 정치인은 “건방진 놈, 어린놈, 인생 선배”와 같은 ‘놈놈놈’ 발언으로 586세대 꼰대의 끝판왕으로 등극하고 있다. 오십 줄 나이 든 것도 서러운데, 정치권까지 저 모양이니, 혹여나 꼰대 집단으로 도매금으로 넘어갈까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 한 시장조사 기관이 19∼59세 직장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3 꼰대 체크리스트’를 공개해서 화제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충고를 한다’가 1위를 차지했다. 꼰대들은 ‘요즘 젊은 애들은’, ‘옛날에 비하면 나아졌다’, ‘내가~했을 때’라는 말을 자주 한다고 한다.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쉽게 반말한다’ 항목도 눈에 띈다. 그나마 응답자의 94%가 ‘나이가 많다고 다 꼰대는 아니다’라고 답변한 점이 위안이 된다. 노력만 하면 꼰대에서 탈출할 수 있는 셈이다. ‘혹시나 내가 꼰대인가’ 의심된다면 스스로 꼰대 체크리스트를 살펴보는 것도 필요하다. ‘생각이 과거에 멈춘’ 사람들은 내 가치관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잘못된 부분을 고쳐 나가고, 나이나 지위로 대우받으려 하지 않는 자세를 키우면 행여나 꼰대 굴레를 벗을 수도 있다. 꼰대의 시간은 이미 지나가고 있다. 기득권 사수에만 목매는 꼰대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이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