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MoCA, 오늘 만나는 미술] 사랑 없는 사랑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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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습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 무제5’

2001년 서브컬쳐의 B급 감성과 사이비 종교를 결합한 ‘명랑교 첫 부흥회_난 명랑을 보았네’를 시작으로 블랙유머를 통해 사회의 위선을 보여줬던 조습 작가의 2004년 작품으로 영상처럼 보이지만 300여장의 사진을 MS사의 파워포인트로 구동하는 디지털 슬라이드 프로젝션 작업이다. 이 시기 조습 작가는 영화의 스틸 이미지를 연상하게 하는 사진을 통해 역사와 사회 상황 또는 개인의 서사를 ‘명랑하게’ 과장하며 이야기를 엮어내는 작업을 주로 하였다. 이 작품도 작가가 당시 즐겨 사용하던 전형적인 B급 문법을 따라가는 내러티브로 명랑소설, 일일 연속극과 같은 통속적 막장극을 명랑한 연출로 보여주고 있다.

줄거리는 이렇다. 1980년대 서울, 때는 여름이었다. 고등학생 수봉(조습)은 친구들과 함께 공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마침 그곳을 놀러 온 순덕여고 불량 여고생들과 마주치게 된다. 여고생 패거리 대장인 올리비아 핫세를 닮은 형주는 파워게임의 최상위 포식자, 권력의 먹이사슬 정점에 서 있는 팜므파탈 여고생으로, 장난 삼아 수봉을 거칠게 성추행 하는데 이 알 수 없는 가학적 사랑에 눈을 뜬 수봉은 살짝쿵 데이트 브라보콘을 들고 제 발로 그녀를 찾아가 복종하며 애정을 갈구한다. 하지만 올리비아 핫세를 닮은 형주는 이미 옆 남자고등학교 불량배 패거리 대장인 재현과 사귀는 관계이다. 이미 하이틴들의 순수함과 건전함 따위는 파탄에 이른 스토리지만 조습식 19금 얄개전은 이 어긋난 사랑을 기점으로 무지성 질투와 선정적 욕망으로 가득 찬 애정의 배틀그라운드에 돌입하는데.

근본적으로 정상을 벗어난 이 삼각관계는 수봉이 형주를 되찾기 위한 재현과의 결투로 폭주하게 되면서 파국으로 치닫는다. 결말은 수봉은 재현과의 결투에서는 승리했지만 형주의 사랑은 되찾지 못한다. 사랑의 먹이사슬 밑바닥을 기는 자의 고단함과 패배감을 담은 그의 얼굴과 만신창이가 된 몸뚱이가 줌 아웃 되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이 작품은 의도적으로 서브컬쳐의 저속한 선정성과 유치함의 공식을 조습식 독해로 보여주고 있다. 조습 작가의 작품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관람자들이 직관적이고 즉각적인 이해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을 보고 웃음이 터지는 순간 우리는 부조리, 비이성, 비윤리, 하찮은 욕망들도 너그럽게 받아드리는 알 수 없는 관용이 생겨난다. 사실 그런 관용이 사회의 갈등을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 작품은 2004년 제2회 부산비엔날레 ‘틈 - 영화욕망’ 전시를 위해 당시 부산시에서 제작 지원하였으며, 2021년 부산현대미술관 소장품이 되었다.

김가현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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