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 도시’ 부산서 등장한 전국 첫 ‘목욕탕 잡지’
매끈목욕연구소‘집앞목욕탕’ 발간
따뜻한 소식·해외문화 등도 소개
동래온천, 해운대온천을 보유한 부산에 지금껏 이런 잡지 하나 없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부산에서 전국 최초로 ‘집앞목욕탕’이라는 제호를 단 목욕탕 전문 잡지가 나왔다. 사람들 관심에서 멀어지는 목욕탕이 문화자산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고, 세계인을 불러 모을 수도 있다는 취지라고 한다. 이른바 ‘목욕탕 르네상스’를 꾀하겠다는 거다.
사고를 친 곳은 부산 도시브랜딩 기업 싸이트브랜딩이다. 이 기업은 매끈목욕연구소라는 프로젝트팀을 만들어 지난달 동네 목욕탕 전문 잡지 집앞목욕탕을 냈다. 임직원이 모두 8명인 기업인데 목욕탕 사업에 관심이 있어서 자료를 모으고 연구를 하다 이번에 아예 잡지를 내게 됐다고 한다. 매끈목욕연구소는 동네 곳곳에 자리해 사랑방 역할을 해온 목욕탕 문화에 주목한다. 매끈목욕연구소 관계자는 “지친 하루의 피곤을 씻어내고, 이웃 간 정겨운 소통의 장 역할을 해온 동네 목욕탕은 우리가 소중하게 지켜야 할 생활문화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집앞목욕탕엔 목욕탕을 매개로 동네 이야기, 사람 이야기를 풀어내고 역사와 해외 목욕 문화까지 담는다. 창간호는 지난 10월 냈다. 지난달 말 발간된 2호는 ‘구덕탕’ 이야기에 집중했다. 1981년 부산 서구 대신동에서 문을 연 동네 목욕탕이지만 동네 목욕탕만은 아니다. 2009년 드라마 ‘친구’, 2018년 개봉한 영화 ‘마약왕’에도 등장했다. 그동안 실내 타일 한 장도 교체하지 않았다는 스토리엔 놀랍기만 하다. 2호엔 구덕탕을 26년간 운영해온 주인 내외의 이야기, 단골손님 인터뷰도 실렸다.
2호에는 구덕탕이 자리한 대신동에 얽힌 예사롭지 않은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구덕터널이 1984년 개통 당시 전국에서 가장 긴 터널이었다는 건 부산 사람도 잊고 있던 사실이다. 구덕교회를 요새 한창 잘나가는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이야기도 담겼다. 건축 전공자들의 인기 답사지이기도 하단다.
매끈목욕연구소는 목욕탕이 새로운 문화 장소로 거듭날 수 있다고 믿는다. 일본 도쿄 목욕탕은 목욕 시설과 함께 위스키 바 등 즐길 거리까지 갖추며 변모하고 있다는 게 매끈목욕연구소 전언이다. 대중탕으로 100년 이상 운영돼 문화재로 지정된 대중탕 ‘코스기유’에는 공연과 강좌가 벌어져 젊은이들이 줄지어 몰려온다고 한다.
부산이 한국의 ‘목욕 명가’라 해도 누가 반박할까. 이걸 다시 살려보자는 게 매끈목욕연구소가 노리는 지점이다. 부산은 온천장이라는 지명이 있을 정도로 목욕 문화가 발달한 도시다. 동래온천은 조선시대 왕족이 목욕을 즐겼던 곳이었다. 1910년대 근대 온천이 개발되면서 최고의 온천지로 떠올랐다. 해운대온천은 전국 최고 수준이다.
매끈목욕연구소 안지현 소장은 “신세계 센텀시티 온천에는 관광객들이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며 “동네 목욕탕도 특징과 강점을 갖추고 있다. 장점은 살리되, 운영방식을 전략적으로 개선하고 문화 콘텐츠까지 입혀낸다면 목욕탕 문화에도 ‘르네상스’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