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에 분노한 2030세대, 역사를 다시 봄
“독재의 역사 반복하지 말자”
부산대·부경대 과거사 대자보
관객 절반 이상이 2030세대
‘심박수 챌린지’로 분노 표출
실제 모델 다룬 책 인기 역주행
‘일해공원’ 명칭 개정 논란도
1000만 관객을 앞둔 영화 ‘서울의 봄’이 젊은 세대에게 폭발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부산 대학가에는 수개월 만에 대자보가 붙었고, 전두환 씨 고향인 합천에서는 그의 호를 딴 공원 이름을 바꾸자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신군부가 ‘12·12 군사 반란’을 일으킨 지 44년째 되는 날인 지난 12일. 부산대학교에 독재의 역사를 반복하지 말자는 취지의 학생 대자보가 등장했다. 대자보에는 ‘영화 서울의 봄을 보며 답답함을 느꼈다’며 ‘문득 영화의 시간에서부터 벌써 40년이 넘은 지금 우리 사회는 얼마나 바뀌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내용이 담겼다. 같은 날 부경대학교에도 대자보가 붙었다. 대자보에는 ‘우리는 그날의 역사를 성공한 혁명, 승리의 역사로 보지 않는다’며 당시 상황을 평가했다. 이 대자보는 학생과에 인허가 도장을 받지 않고 게시됐다는 이유로 철거됐다.
영화 ‘서울의 봄’은 젊은 세대에 특히 인기가 높다. CGV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서울의 봄’ 관객 중 20대가 26%, 30대가 30%로 20·30대 관객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2·12 군사 반란과 영화 속 캐릭터가 비교적 익숙한 세대인 40대(23%), 50대(17%)보다 높다.
극장보다 숏폼, 코미디, OTT를 선호하기 시작한 2030세대를 불러들인 건 ‘서울의 봄’ 영화 자체가 가진 매력 덕분으로 보인다. 신군부 세력의 반란 모의와 육군참모총장 납치, 대통령 재가 시도, 병력 이동과 대치, 정권 탈취 등을 긴박하게 그려 스릴러 영화 이상으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는 2030세대 평가가 잇따랐다.
특히 2030세대는 ‘서울의 봄’을 보고 ‘분노’를 느끼고 있다. 이들은 영화를 보는 동안 심박수가 올라가는 사진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리는 ‘심박수 챌린지’까지 벌이고 있다. 분노가 섞인 영화 감상평을 SNS에 올려 친구들과 공유하기도 한다.
극 중 대사와 인물을 활용한 각종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도 유행 중이다. 대학생 전형서(25) 씨는 “친구가 제멋대로인 행동을 할 때 ‘전두광이냐’고 말하는 등 영화 캐릭터 자체가 농담이 됐다”고 말했다. 영화 감상 자체가 하나의 놀이 문화로 자리 잡은 모습이다.
영화를 보기 전후에 12·12 군사 반란을 공부하는 등 이른바 ‘에듀테인먼트(교육과 연예의 합성어)’ 열풍도 불고 있다. 대학생 정두나(23) 씨는 “영화를 좀 더 재미있게 즐기려고 영화관에 가기 전 유튜브에 올라온 ‘서울의 봄 보기 전 꼭 알아야 할 역사적 사건 순서’를 보고 갔다”고 말했다. 김지원(27) 씨는 “영화를 관람한 후 여운이 남아 영화 속 이태신 장군의 실존 인물인 장태완 장군에 대해 찾아봤다”며 “반란군에 맞서 ‘난 죽기로 결심한 놈이야’라고 말했다고 하던데 영화보다 훨씬 강하고 지도력 있는 성격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서울의 봄’과 관련한 책들까지 역주행하면서 영화의 인기가 문화 콘텐츠로도 옮겨가고 있다. 서점 한 쪽에는 ‘서울의 봄’ 코너가 등장하기도 했다. 영화 속 실제 인물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극 중 이태신 장군의 실제 모델인 장태완 장군 자서전을 찾는 법을 공유한 블로거도 있다.
사회적 여파도 크다. 영화 속 실존 인물의 추모제를 찾는 이들도 늘어났다. 지난 12일에는 극 중 오진호 소령의 실제 모델인 김오랑 중령 추모제가 그의 고향인 경남 김해시에서 열렸다. 추모제에는 타지에서 방문한 추모객을 비롯해 평소보다 많은 이들이 참석했다.
전 씨 호를 딴 합천 ‘일해공원’ 명칭 개정 논란도 재점화되고 있다. 공원 명칭 변경을 추진해 온 ‘생명의 숲 되찾기 합천군민운동본부’는 지난 12일 합천시네마에서 주민들과 영화 ‘서울의 봄’을 단체 관람하고 일해공원 이름 바꾸기 운동 재추진 뜻을 밝혔다. 고동의 운동본부 간사는 “영화를 계기로 일해공원 이름 바꾸기 운동을 비롯해 전 씨 흔적 지우기 운동을 계속해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양보원·김현우 기자 bogiza@busan.com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