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만 생각하면 왜 눈물이 날까
서해 북단부터 울릉도까지 일주
맛깔나는 지역음식에 군침 가득
'공존의 바다' 위해 할 일은 뭘까
도시인 마음 움직이는 섬책 등장
섬살이, 섬밥상/김준
언젠가 너무 맛있게 국수를 먹고는 대체 육수를 어떻게 내는지 물었던 적이 있었다. 며느리도 모르는 맛의 비법은 디포리였다. 고백하자면 지금까지도 멸치 사촌 중에 덩치가 좀 크고 맛이 진한 디포리가 있는줄 알았다. 디포리가 밴댕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밴댕이 소갈머리 같다’고 할 때의 바로 그 밴댕이다. 밴댕이의 배를 갈라 내장의 크기가 생각보다 작자, 사람들은 남의 속도 모르고 그렇게 편견을 갖는다. 어쨌든 밴댕이는 머리와 내장을 빼고 좌우로 칼질을 해 한 점으로 떠 낸다. 한 마리에 회 한 점. 오롯이 한 마리를 통째로 삼킨다니, 이것 역시 일기일회(一期一會)다. 갯내음 찾아 떠나는 여행은 강화도 후포의 ‘밴댕이 마을’에서 이렇게 맛깔나게 시작한다. 밴댕이는 회뿐만 아니라 무침, 구이, 튀김, 완자탕까지 한 상을 차려 낸다니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어진다.
<섬살이, 섬밥상>은 서해 북단의 강화·옹진부터 시작해서 남해의 끝 부산까지, 동해는 기장부터 시작해 울릉도까지 전국의 바닷가를 일주한다. 섬살이의 속살을 섬밥상이 잘 보여주기에 제목이 참 절묘하다. 그러면 출발하겠으니 허리띠 푸시라. 보리밥과 잘 어울리는 ‘운저리(망둑어)회무침’, 김장보다 더 기다려지는 ‘물걸이(중하)무침’, 더위를 식혀 줄 ‘우미(우뭇가사리)냉국’, 꽁치로 완자를 빚어 만든 ‘꽁치다대기추어탕’, 박대 껍질로 만든 ‘벌벌이묵’, 굴 껍데기까지 삶아 거른 육수로 만든 ‘피굴’, 감태로 만든 김치 ‘감태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상상 속의 음식이라던데, 이건 정말 참기 어려운 수준이다.
이 책에는 먹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흔하디흔한 김이 아주 귀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때는 김 한 장을 나누는 것도 격식이 있었다. 할머니는 4등분, 아버지는 6등분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수저를 덮을 정도로 잘게 찢어서 줬다. 섬음식과 맛을 이야기하지만 결코 먹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오늘날 연평도는 꽃게로 알려졌지만 1960년대까지는 무조건 조기였다. 거추장스러운 꽃게는 쳐다보지도 않았단다. 고추 모종을 심고 거름 대신 꽃게 한 마리를 푹 찔러놓았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그 많던 조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 궁금해진다.
백령도 어민들은 놀래미(노래기)를 많이 잡는다. 문제는 백령도에 놀래미를 인간보다 더 좋아하는 점박이 물범도 산다는 점이다. 같은 걸 놓고 다투니 어민과 물범은 견원지간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물범을 보호하는 주민들 모임까지 만들어졌다. 물범 주요 서식지인 백령도가 국가생태관광지로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백령도는 생태관광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되었다. ‘공존의 바다’를 가져온 놀래미, 찜이 유명하다던데.
백합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는 사연은 또 이렇다. 새만금이 방조제로 막히고 백합이 모래갯벌 위로 올라와 하얀 속살을 드러내고 죽어가던 모습을 잊지 못 한다. 인천의 장봉도는 아직도 백합으로 섬살이를 한다. 트레킹 코스와 해수욕장이 좋은 섬이지만 다만 갯벌체험을 한다며 갯벌을 파헤치는 일은 삼가달라고 부탁한다. 그곳은 주민들의 텃밭이기 때문이다.
대체 누가 이런 이야기를 세세하게 펼쳐 놓을까. 30여 년 섬을 기웃거린 섬박사 김준 박사다. 김 박사는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소, 광주전남연구원에서 평생 섬과 어촌을 연구하다 정년퇴직했다. 지금은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의 학술연구교수로 여전히 섬과 어촌을 답사하고 있다. 이생진 시인은 그에게 “섬을 보는 눈, 섬사람을 찾는 마음에 늘 배려가 깃들어 있었다”라고 했다. 실은 한국음식문화포럼의 일원으로 부산에 온 그를 몇 번 봤는데 역시나 배려 있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수많은 섬을 다닌 그에게 특별한 섬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밥상머리에서 섬주민과 겸상을 한 섬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단골집은 손맛으로만 찾는 것이 아니다. 더 중한 것이 사람 맛이다”라고 말하는 이니 어련할까 싶다. 책을 덮고 나니 지역의 제철 음식들이 머릿속에서 떠다닌다. 그래, 떠나자. 맛았게 먹고 나면 모든 게 귀하게 보일 것이다. 도시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섬책이 등장했다. 김준 지음/따비/452쪽/23,000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