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일해공원’ 언제까지…
경남 합천군 합천읍 황강 옆에 일해공원이 있다. 2004년 준공된 이 공원의 원래 이름은 ‘새천년 생명의 숲’. 그런데 3년 뒤에 느닷없이 명칭이 바뀐다. 당시 합천군수가 군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두환의 아호 ‘일해’를 따서 개명해 버린 것이다. 전두환의 고향이 바로 합천, 그러니 개명 때부터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올해 6월에도 한 시민단체가 명칭 변경을 요구했으나, 합천군은 찬반 주장이 대립한다는 이유로 청원을 부결했다. 갈등은 16년째 지속 중이다.
‘일해(日海)’라는 아호가 태어난 배경이 궁금해 찾아보았다. 전해지는 바는, 탄허(1913~1983) 스님이 지어주었다는 것이다. 탄허가 누구인가. 유불선을 두루 아우르며 인문학·동양학·철학에도 깊은 경지에 닿았던 당대의 선지식이다. 호방했던 '인간 국보' 양주동 박사가 탄허의 장자 강의를 듣고 오체투지로 극찬한 일화는 유명하다. 대승불교의 총람이라 할 화엄경전을 모두 번역한 탄허의 공로는 불교사에 특히 빛난다. 현대 한국불교의 거목인 탄허가 대통령 전두환의 아호를 지어준 건 1982년 무렵. 안타깝게도, 무슨 연유인지, 어떤 배경인지 전혀 알 길이 없다.
전두환은 1980년 ‘10·27 법난’을 자행한 인물이기도 하다.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뒤 광주를 유혈 진압한 신군부 세력은 대대적인 불교 탄압에 나선다. 조계사 등 전국 사찰을 급습해 조계종 총무원장 등 2000여 명을 연행하고 서류·재산까지 압류한 10월 27일은 한국불교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날 중 하나로 기억된다. 이런 악연에도 탄허는 호를 지어주었으니, 누구의 허물이 큰 것인지 모를 일이다. 살아생전 전두환은 불교계를 군홧발로 짓밟은 일에 대해서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영화 ‘서울의 봄’의 인기 여파로 일해공원의 명칭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주목받는다. 공공장소에 이름을 세운다는 것은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어떤 성취나 업적을 기리고 싶은 경우가 있다고 치자. 명칭과 관련된 여러 견해가 나올 수 있고, 특정 명칭이라면 찬반 의견이 갈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오가 명명백백할 경우는 다른 문제다. 단 한 사람이라도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낀다면 그 이름이 공적 영역에 나부껴서는 안 된다. 애초에 잘못 붙여진 이름이라면 응당 바로잡을 일이다. 전두환은 내란죄와 살인 혐의로 무기징역까지 선고받았고 특별 사면 뒤에는 어떤 반성도 사과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그를 둘러싼 명칭 논란, 이제는 끝내는 게 옳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