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재파의 생각+] 후속 세대를 위한 아름다운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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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대 기초교양대학 교수·공모 칼럼니스트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젊은 세대
기득권 집착하는 기성세대와 대비
미래 위해 사회 주축 바꿔야 할 때

최근 쿠팡플레이의 ‘대학 전쟁’이란 예능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간단히 설명하면 서울대, 카이스트, 포항공대, 연세대, 고려대 이른바 ‘서카포연고’ 학생들이 팀으로 나와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승부를 겨뤄 우승 대학을 가리는 프로그램이다.


‘더 지니어스’, ‘문제적 남자’와 같이 문제를 푸는 프로그램을 좋아해 보기 시작하였는데, 참가자들이 문제를 푸는 과정을 보는 재미도 재미이지만 기성세대와는 다른 젊은 세대, 특히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후속 세대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어서 더욱 흥미롭게 보았다.

먼저 우리 후속 세대들의 첫 만남을 살펴보자. 1화에서는 각 대학 참가자들이 처음 만나 인사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기성세대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이름과 자기소개를 한 후 어김없이 “몇 학번이에요(몇 살이에요)”라는 질문을 했다. 기성세대라면 여기서 나이에 따라 서열이 정해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들은 기성세대와 달랐다.

서울대 학생들은 “어차피 계속 같이 할 건데 말 편하게 하자”며 말을 놓았고, 카이스트의 경우 가장 나이가 많은 학생이 “존댓말을 쓰면 여러모로 불편하니까 지금부터 반말하자”고 제안해 서로 말을 놓았다. 이외 다른 대학들도 그 과정이 방송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모두가 존댓말 없이 서로 편하게 말을 놓고 있었다.

나이에 따른 서열을 없애고 말을 편하게 해서일까. 그들은 문제가 주어질 때마다 자유롭게 그리고 때로는 치열하게 자신의 의견을 제안하고 논의하며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서열에 따라 누군가가 최종 결정을 내리는 수직적 구조가 아닌 모두가 같은 위치에서 토론하고 합의하여 합리적 결정을 내리는 수평적 구조를 만든 것이다.

다음으로 미국 하버드대를 대하는 자세도 인상적이었다. 포항공대가 탈락하고 그 자리에 하버드대 팀이 들어오게 되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 명문대학의 등장에 기가 눌릴 법도 하지만 우리의 후속 세대 학생들은 전혀 주눅들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의 주입식 교육 힘’으로 그들을 이기겠다며 전의를 불태운다.

역사적 맥락에서 기성세대는 전쟁과 산업화를 거쳤고 이 과정에서 선진국의 원조를 받는 가난한 나라의 국민이었다. 따라서 국제 사회에서 어딘지 모르게 자신감이 부족했으며 학문적, 문화적 사대주의에 빠진 모습도 일부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후속 세대는 어떠한가. 원조를 받는 나라가 아닌 도움을 주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선진국의 학문과 문화를 그대로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선진국에 진출하여 그들보다 더 큰 성취를 이루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 후속 세대들은 국제 사회에서 주눅들지 않고 그들과 당당히 경쟁하고 또 세계를 선도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들이 이끌어 나갈 우리나라의 밝은 미래가 벌써 기다려진다. 그러나 행복한 상상도 잠시. 최근 정치권에서 들려오는 기득권 세력과 관련한 뉴스를 보면 과연 우리의 후속 세대가 이 땅에 설자리는 있는지 우려돼 금세 우울해진다.

인요한 전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이준석 전 대표에게 단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준석이’ 운운한 사건,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어린 놈이’라고 비난한 사건들을 보면 우리 정치권에 나이 서열 문화가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나마 나이 서열로 젊은 세대를 깎아내리는 것은 양반이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젊은 청년 정치인을 발탁해 2030 청년층의 표심을 사는 데 소모하고 선거가 끝나면 청년 정치인과 청년을 위한 공약을 토사구팽하기 일쑤이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우리 후속 세대는 사회를 이끌기는커녕 목소리를 내는 일조차 힘든 형편에 처해 있다.

더 무서운 것은 여야 할 것 없이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며 기득권 유지를 위해 필요한 일은 무엇이라도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 권력을 가지고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잡고 유지하는 것, 권력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이들의 모습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빅 브라더 당과 다른 점이 없다.

AI를 필두로 한 첨단 과학 기술의 발달로 매일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는 21세기, 기성세대가 기득권을 잡고서 후속 세대가 올라올 사다리를 걷어차서는 우리의 미래가 없다. 격변하는 시대 우리나라가 세계와 경쟁하고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젊은 후속 세대가 사회의 주축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성세대는 구태 정치를 비판하며 정치권에 입성한 젊은 날을 스스로 되돌아보고, 유능하고 젊은 후속 세대를 위해 기득권을 내려놓는 아름다운 퇴장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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