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2024년을 에너지 분권 원년으로
김영한 사회부장
지방 생산 에너지 발판 삼아
수도권 크는 구조 바뀌어야
“잃었던 지방 권리 찾겠다”
전국서 요구 분출, 정부도 맞손
지역별 전기요금 등 실현 땐
지방소멸 막을 묘안 될 수도
그동안 왜 이상하다 생각하지 않았을까. 지방이 에너지를 생산해 수도권으로 보내는 비정상적인 상황 얘기다.
산유국이나 천연가스 보유국은 큰돈을 받고 에너지를 파는데 한국 내에서는 발전소가 있는 곳이 같은 역할을 한다. 국내 발전소 대부분은 지방에 몰려 있다. 국내 전력망은 영·호남과 충청 지역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는 구조다. 그런데 지방에는 아무런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
전국 전력 자급률만 보면 에너지 자산을 누가 쥐고 있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2021년 기준 부산 전력 자급률은 188%다. 경남과 울산도 각각 121%, 96%다. 울산은 기업이 많아 전력도 많이 쓰인다. 충남(221%) 경북(182%) 전남(178%)도 ‘에너지 부자’ 지역이다. 하지만 서울은 불과 11%이며 경기도 59%에 그친다. 수도권에서는 인천이 유일하게 237%로 제몫을 하지만 대부분 화력발전소에 의존하고 있어 지속가능성에는 의문 부호가 따라붙는다.
돌려 말하면, 수도권은 혐오시설로 치부되는 발전소를 두지 않고 지방에 기대 발전해왔다는 의미다. 혹자는 지방이 수도권의 ‘에너지 식민지’라고까지 얘기한다
그러면서 정부와 에너지업계는 전력망 문제를 두고 고민이다. 지방에서 생산한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내야 하니 생긴 골칫덩어리다. 수도권 기업이나 가정에서 점점 전기를 많이 필요로 하니 기존 전력망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뾰족한 답도 없는 문제다.
국가적 난제라 하지만 지방에서 보면 황당한 일이다. 서울과 경기도에 발전소를 지으면 저절로 풀릴 일이다. 수도권에서 쓸 에너지를 보낸다고 제 집 앞산과 들판에 생채기를 낸다는데 누가 반길까. 전력이 필요한 곳에 발전소를 짓는, 생산과 소비를 일치시키는 노력을 해야 정상적이지 않은가. 수도권에서 감당이 안된다면 사람과 기업을 에너지가 풍부한 곳으로 분산시키는 정책을 고민해야 마땅하다.
지방도 ‘에너지 생산자’ 권한 행사에 적극적이다. 에너지가 자산이고 힘이라는 사실을 인식한 때문이다. 이른바 ‘에너지 분권’ 실현 욕구가 분출하고 있다. 박수영(부산 남갑) 국회의원은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 통과를 주도하며 지방의 에너지 주권 되찾기 최일선에 섰다.
경북도 같은 지자체는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며 지역별 전기요금제 도입 필요성을 알리고 있다. “KTX 요금도 거리가 멀어지면 가격이 다른 것처럼 전기요금도 송전 거리에 따라 차등화해야 합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최근 열린 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이 주장에 틀린 내용이 있는지 누가 반박해 보라.
제주와 울산 등은 벌써부터 분산에너지 특구 지정을 위해 뛰고 있다고 한다. 에너지 분권이 이뤄져야 할 시점이 됐다는 사실을 인식한 때문에 나오는 움직임들이다.
에너지 분권 실현은 지방을 살릴 묘안도 될 수 있다. 지방에 산업단지나 다양한 방식의 특구를 만든다고 해도 기업이 오지를 않는다. 부산도 기업을 유치해 일자리를 만들려고 오랜 기간 노력했고 일정 부분 성과도 냈다. 하지만 기업 몇 개 온다고 새로운 산업 기반이 갖춰지지 않는다. 기업들이 균형발전에 동참하겠다고 스스로 옮길 이유가 없다. 인재나 자본이 풍부한 수도권을 떠날 리도 없다. 지방에는 기업이 와도 자본이 없고 일 할 사람도 적다. 미래 먹거리라고 불리는 첨단 산업이 모두 수도권으로 몰려간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 역시 에너지 분권을 장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첨단 산업이 발달하며 전력 수요가 수배, 수십 배 늘어나고 있는데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전력을 보낼 전력망을 구축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정부가 새로 내세우는 분산에너지 정책은 간단히 말해 에너지 소비자가 있는 곳에 발전소를 지어 해결하라는 것이다. 발전소나 송전 선로가 싫다면 비싼 요금을 물고 사용하라는 것이다.
올해 6월 국회를 통과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 시행령과 시행규칙 제정을 거쳐 내년 6월 시행에 들어간다. 그동안 에너지 생산자 지위를 누리지 못한 지방은 앞으로 하위 법령들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주목하고, 더욱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무엇보다 지역별 전기요금제 도입 시기와 방향을 잘 살필 필요가 있다. 에너지 생산과 소비를 일치시키지 못한다면 기업이나 사람이 전력 생산지로 가겠다고 나설 정도로 전력 사용 비용 구조를 명확히 해야 한다. 마침 생성형 인공지능이나 데이터센터 같은 첨단 산업은 기존 산업들에 비해 전력이 훨씬 더 필요하다고 한다. 첨단 산업 기반이 지방에도 들어설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새해는 에너지 분권 원년이 되길 희망한다. kim01@busan.com
김영한 기자 kim0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