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소주 한 잔 생각날 때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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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한 잔 생각나는 밤/ 같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좋았던 시절들/ 이젠 모두 한숨만 되네요/ 여보세요 나야 거기 잘 지내니/ 오랜만이야 내 사랑아/ 미친 듯이 외쳤어!” 노래방 좀 다녔다는 사람이면, 가수 임창정의 ‘소주 한 잔’을 불러본 경험은 갖고 있으리라. ‘소주 한 잔’ 마시고, 연인과 이별의 아픔을 토로하는 ‘미친 듯이 외쳤어~’를 목청껏 부르면서 아픔에서 회복하는 힘을 얻기도 했다.

이처럼 소주는 사랑과 이별, 사회생활 등에서 버팀목과 가교 역할을 해 주는 ‘서민의 벗’이다. 불판에서 연기를 내고 굽히는 고등어나 삼겹살, 기름기 가득한 광어의 하얀 뱃살, 김치찌개 등 한국의 모든 음식에 어울리고, 맥주랑 섞어 마시기에도 더할 나위 없다. 우리나라 국민 1명이 1년 평균 마시는 소주는 무려 53병에 이른다고 한다. 비음주 인구를 뺀다면 지친 하루를 위로하는 목적의 소주 소비량은 실로 엄청난 셈이다. 가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맛과 문화다.

고려 충렬왕 때 몽고군 주둔지를 통해서 한반도에 전해졌다는 소주는 조선시대에는 ‘소주를 마시는 사람이 많아져서 쌀의 소비가 늘고 있으며, 음주로 인한 피해가 크고, 금주령까지 내렸다’는 기록이 〈중종실록〉에 나오기도 한다. 1960년대 식량난이 닥치자, 국민식량 확보 차원에서 양곡관리법을 제정하여 쌀 대신, 값싼 타피오카와 잘라 말린 고구마, 당밀 등을 주정 원료로 한 ‘희석식 소주’가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정부가 서민 물가 안정 차원에서 내년 1월 1일부터 소주 공장 출고가를 1247원에서 1115원으로 132원(10.6%)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국세청이 국산 소주·위스키·브랜디 등 증류주에 일종의 세금 할인율인 기준판매비율을 도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당과 주점에서 5000~6000원에 판매되는 소줏값이 내릴지는 미지수라고 한다. 주류회사에서 주정 원료와 유리병값 인상을 이유로 되레 가격을 7% 올릴 예정이기 때문이다. 줄어든 세금은 어디로 가는 걸까. 자칫 주류업체의 배만 채워 주지 않을까.

정말이지 안 오른 게 없다. 고물가 지속으로 내년에도 외식 등 소비 지출을 줄이겠다는 소비자 여론 조사 결과가 쏟아질 정도이다. 친구, 직장 동료들과 둘러앉아 회 한 점에 소주 한 잔 마시며 일상을 내려놓는 위안을 어디서 얻을까. 가뜩이나 추운 날씨에 지친 몸과 마음을 데울 소주 한 잔 마시기 부담스러운 시대가 돼버렸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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