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분양가에 쓸모없어”… 청약통장 100만 명 깼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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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자수 1년 새 107만여 명 감소
10월 기준 16개월 연속 내리막길

분양가 상승·고금리에 장점 줄어
실수요자와 괴리감 좁혀지지 않아
정부, 청년전용 신설 등 대책 마련

청약통장이 분양가 상승과 고금리 장기화 등으로 인해 1년새 전국에서 100만 개 넘게 해지됐다. 서울 시내 한 은행에 주택청약종합저축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청약통장이 분양가 상승과 고금리 장기화 등으로 인해 1년새 전국에서 100만 개 넘게 해지됐다. 서울 시내 한 은행에 주택청약종합저축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자영업자인 김 모(38) 씨는 10년간 유지했던 청약통장을 이달 초 해지했다. ‘로또 청약’의 부푼 꿈을 안고 묵혀뒀던 통장이었지만, 치솟는 분양가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졌다. 김 씨는 “청약통장에 있던 600만 원을 빼서 마이너스 통장을 메꾸는 데 썼다”며 “최근 아파트 분양가를 보고 청약을 넣을 엄두가 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분양가 상승과 고금리 장기화 등으로 청약통장을 해지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때 재테크의 ‘기본템’으로 손꼽혔던 청약통장이었지만, 1년 새 전국에서 100만 개가 넘는 청약통장이 해지됐다. 같은 기간 부산지역 민간 아파트 평균 분양가격은 3.3㎡당 2000만 원대를 돌파했다.

18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기준 전국 주택청약종합저축 가입자 수는 2575만 1691명이다. 지난해 10월 가입자 숫자가 2682만 3807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07만 2116명이 줄었다. 청약통장 가입자 수는 지난해 6월 2703만 1911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16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매달 평균적으로 8만~9만 개의 청약통장이 해지되는 추세다. 1977년 주택청약종합저축이 출시된 이후 전국 단위 가입자 수가 줄어든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다.

청약통장은 서민들에게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돕는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가입 기간과 부양가족 수, 혼인 여부 등에 따라 청약 가점을 줘 시세보다 저렴하게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게 디딤돌 역할을 했다. 하지만 분양가가 시세 수준으로 치솟고, 집값 상승 기대감이 줄어들면서 외면받기 시작했다.

청약통장 해지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분양가 상승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발표한 올해 11월 ‘민간아파트 분양 가격 동향’에 따르면 전국 민간 아파트의 3.3㎡당 평균 분양가격은 1710만 3900원으로 9개월 연속 오름세를 지속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1.6% 상승한 가격이다. 서울의 분양가는 3.3㎡당 3414만 5100원으로 전년 대비 14.4% 올라 상승 폭이 컸다. 부산의 경우 3.3㎡당 분양가가 2069만 1000원으로 지난해보다 4.3% 상승했다.

부산의 한 분양업계 관계자는 “이제는 부산 도심에 브랜드 아파트가 들어설 경우 2000만 원대 초중반 이상의 분양가가 당연시되는 분위기”라며 “공사비 등을 고려하면 분양가를 더 이상 낮추기 힘든데, 이를 바라보는 실수요자들과의 괴리감이 좀체 좁혀지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20~30대 아파트 구매 비중은 30% 아래로 떨어졌다. 지난 10월 20~30대 아파트 매입자는 전체의 29.4%로 올해 최저점을 기록했다. 거래 비중이 30% 밑으로 내려온 것은 올 들어 처음이고, 지난해 12월과 동일한 수준이다.

이에 정부는 내년부터 ‘청년전용주택드림 청약통장’을 신설해 분위기 반전을 꾀한다. 34세 이하 무주택 청년이 청약통장에 가입해 주택을 분양 받으면 주택담보대출을 연 2%의 저금리로 받을 수 있다. 청약저축 금리도 연 4.3%에서 4.5%로 높아진다.

또 내년부터는 주택청약저축 납입액 소득공제 한도를 연 240만 원에서 300만 원으로 상향한다. 신혼부부의 주택 청약 횟수도 기존 부부 합산 1회에서 부부 각각 1회로 늘린다. 같은 날짜에 당첨자가 발표되는 청약에도 부부가 개별 통장으로 신청이 가능해진다. 이 같은 정책적 변화에도 고금리와 분양가 상승이 지속된다면 실질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미지수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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